‘28년 공전’ 해운거래소, 드디어 설립 시동
내년 1월 완료 후 최종보고 예정
영국·싱가포르 등 해운강국 운영
부산 ‘해운·금융허브’ 도약 발판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가 국제해운거래소 설립을 위한 전문용역에 착수하는 등 기반 조성 본격화에 나섰다. 해운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해운거래소 국내 설립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1997년 이후 28년 만이자 해진공 설립 7년 만이다. 국제해운거래소 설립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해양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고난도 작업이라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해진공은 반복되는 해운산업 위기와 탈탄소 규제 대응을 위해 운임 선도 거래, 선박 잔존 가치, 친환경 연료, 탄소배출권(해운·항만) 등 거래시장 조성의 타당성과 경제성을 분석하기 위한 전문용역 착수보고회를 지난 25일 개최했다고 28일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등 반복되는 경기 불황을 겪어오면서, 우리 선사는 물론, 화주와 항만·물류업계가 장기운송계약 외에 이렇다 할 대응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파생상품 거래라는 금융 수단을 이용할 기회를 여는 한편, 날로 강화되는 탄소 규제에 대응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해운거래소 설립을 통해 극복하자는 것이 이 용역의 추진 배경이다.
해진공은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용역 수행을 위해 선사와 금융중개업체에서 풍부한 운임 선도 거래 경험을 갖춘 전문가와 금융투자협회, 한국거래소 실무책임자 등 5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용역은 올해 4분기(10~12월) 중간보고를 거쳐 내년 1월 완료 후 최종보고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통상 해운거래소는 급격한 해상운임 변동에 따른 막대한 손실을 방어하기 위해 해운시장 정보 리서치를 기반으로 선물 성격의 운임 선도 거래(FFA:Forward Freight Agreement)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년 해운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발틱해운거래소가 기원이다. 1744년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모임으로 시작해 1980년대 지금의 해운거래소 형태를 갖춘 후 전 세계 해운 시장정보가 집중되는 센터이자 BDI라는 건화물선 해상운임지수를 발표하는 곳이다. BDI는 미국, 노르웨이, 싱가포르 등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해양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기도 하다.
일본은 도쿄, 중국은 상하이와 주요 항만도시에 해운거래소를 민간 또는 정부 주도로 각각 설립·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거래소(SGX)는 해운거래소가 갖는 중요성과 시장 활성화를 위해 2016년 발틱해운거래소를 인수한 바 있다. 발틱해운거래소 매각으로 영국은 자존심을 구겼지만, 싱가포르는 아시아 해상물동량 집중과 함께 해운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안병길 해진공 사장은 “해운거래소는 우리가 당면한 해운산업 위기 대응과 탄소 규제에 대응하는 수단을 제공하면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해운강국의 위상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철저하게 전문 용역을 수행해 수요와 공급, 법제도 환경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안병길 사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세계 주요 해운거래소가 싱가포르, 런던 등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부산이 동북아 내 독자적인 해운·금융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부산이 단순 항만도시를 넘어, 복합 금융 플랫폼의 중심지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해진공은 운임거래소를 뛰어넘은 한국형 파생상품 거래소, 한국형 국제해운 거래소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해진공이 축적해온 KCCI(KOBC 컨테이너선운임지수), KDCI(KOBC 건화물선운임지수)와 같은 공신력 있는 운임지수를 기반으로, 운임과 친환경 연료 파생상품, 폐선 및 중고선 거래, 탄소배출권 거래 등으로 다른 해운거래소와 차별화를 모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