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동양제철화학의 변신

이문일 논설위원 2025. 9. 28. 18:1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이문일 논설위원

"사업가는 모름지기 덕장이어야 한다. 지략이 좀 모자라더라도 직원을 내 가족처럼 사랑하고 키워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아무리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도 창의적 인재가 없다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동양화학 고 송암(松巖) 이회림 회장이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에서 밝힌 글이다. 그만큼 '사람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송암은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렸다. 1917년 개성시 만월동에서 태어난 그는 신용·근면성실·근검절약을 중시하는 개성상인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1937년 건복상회를 시작으로 사업가로 뛰어든 송암은 1950년대 개풍상사를 설립·운영하고, 1956년에는 서울은행을 창립하면서 국내 산업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하던 1960년대 국가기간산업인 화학업종에 눈을 돌렸다. 결국 이게 인천과 끈끈한 인연을 맺는 계기로 작용했다.

송암은 미추홀구 학익동 앞 바다를 매립하고 264만㎡의 터를 조성해 1968년 소다회 공장을 지었다. 당시 불모지였던 화학산업을 국내 처음 개척한 인물로 꼽혔다. 이후로도 그는 40여 년간 화학산업 분야에만 매진하면서 동양제철화학을 40여 종의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대통령 표창 등 그가 받은 각종 상은 한 우물을 고집한 기업가의 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동양제철화학(현 OCI)은 인천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런 사업을 펼치지 않는다. 이제 공장 자리에는 1만3000여 가구의 '미니 신도시급' 개발이 진행 중이다. 용현·학익 1구역 도시개발사업이다. 동양제철화학은 1997년 아파트 단지를 공장 터에 신축하기 위한 사업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소다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폐석회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는 점이다. 지역 환경운동단체에선 폐석회에서 생성된 침출수가 토양오염을 일으킨다고 보고, 그 처리와 향후 활용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방치된 폐석회를 정화해 다른 데로 옮기는 매립 공사가 곧 마무리된다. 매립지 터는 공원으로 꾸며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일이 끝나면 인천지역 환경운동 역사와 도시개발사에 큰 이정표로 남을 전망이다. '동양제철화학 폐석회 처리방안 모색을 위한 시민위원회'와 용현·학익 1구역 시행사(DCRE)는 지난 23일 폐석회 매립공사 준공 기념식을 열었다.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폐석회를 처리하려고 모색한 지 무려 22년 만이다.

현재 매립 작업은 끝나고 그 위에 흙을 덮는 복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DCRE는 내년 6월까지 폐기물 매립시설에 대한 사용종료 승인을 받은 뒤 7월부터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에 들어간다. 인천시민들의 쉼터이자 유원지로 거듭나기를 고대한다.

/이문일 논설위원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