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들은 왜 저항도 안 했나”…아직 1월9일 머무는 인권위 [현장에서]

“왜 조사총괄과는, 과장님, 국장님, 총장님은 한 마디 저항도 하지 않고 그런 안건을 올렸을까? 결재 못 한다고 드러눕기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저항하지 못하면 연가라도 써야 하지 않았을까? 결재를 올리는 순간 결재자에 이름이 올라가는 사람의 책임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을까? 소관 다툼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끌지도 않았다니 왜 그랬을까?”
지난 24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내부망 자유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을 쓴 직원 ㄱ씨는 ‘윤석열 방어권 안건’(비상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 전원위 의안으로 제출돼 논의된 1월9일을 떠올리며 이 일에 대한 인권위 사무처 간부들의 책임을 다시 물었다. 그날 열린 상임위에서 김용원 위원은 문제의 안건이 제출됐음을 기습적으로 알렸고, 안창호 위원장은 “다음 전원위(1월13일)에 이 안건이 상정되도록 사무처가 결재 절차를 빨리빨리 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수정 침해조사국장과 이석준 사무총장은 상임위가 끝난 지 한 시간도 안 돼 결재를 완료했다. 이날 결재돼 13일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안건은 인권단체와 직원들 반발로 무산됐지만, 2월10일 결국 재상정돼 의결됐다.
ㄱ씨가 해당 글을 올린 지 한 시간도 안 돼 자유게시판에는 또 다른 글이 올라왔다. 당시 안건 결재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는 폭로였다. 직원 ㄴ씨는 “‘윤 방어권 안건’ 상정 과정에 있어 의문점이 발견되어 게시판에 공개한다. 오래전부터 이 내용을 알고 있었으나 지금에서야 이 글을 작성하기로 결심했다”면서 “안건 결재 상신 과정에서 적법절차 준수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소관부서로 지정된 조사총괄과가 안건 내용에 대해 결재를 진행하기 전 전원위 담당 부서인 운영지원과가 안건 논의를 위한 회의 일정 결재안부터 상신한 게 인권위 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이었다.

인권위에서는 새삼 8개월 전인 지난 1월의 안건 상정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ㄱ씨와 ㄴ씨 글에는 26일 현재 각각 10여개와 30여개 댓글이 적혔다. 한 직원은 “무조건 까라면 까는 게 공무원인가”라며 “아무리 생각해도 나라면 그런 건 못한다고 했을 것 같다”고 적었다. 사무처 간부들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안건 내용을 봤으면서도 왜 결재가 지체되도록 최소한의 행동조차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절차 위반 논란까지 더해진 셈이다. 인권위 한 조사관은 “그날 이후 8개월이 지났지만, 인권위는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ㄱ씨가 올린 글의 제목은 “나만 이렇게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일까?”다. 그는 해당 안건이 결재를 거쳐 의안으로 상정된 1월13일 전원위를 앞두고 노조가 주도한 항의시위에 참여할 것인지 노심초사하며 고민하던 일을 담담하게 적었다. 비조합원이라는 그는 ‘좌파 직원’으로 낙인 찍히거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징계를 받을 수 있어 두려웠다고 했다. 번민 끝에 결국 14층 전원위원회실 복도에서 집단 반대 의사 표시를 했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이 조급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우리 위원회는 변화가 없다. 국회에서도 인권위에 대한 관심은 저 멀리다. 우리는 (10월27일) 간리 심사를 앞두고 위원장과 위원들의 반인권적 행태를 예쁘게 포장하여 내기 위해 노력하고 총장·국장·과장들은 위원장 심기 경호에 적극 앞장선다.…이렇게 계속 상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우리 조직은 멸문의 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직은 국회가 관심이 없지만, 관심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무사할까? 우리 조직이 상식적으로 돌아가고, 상식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상식적 의결이 되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내란 옹호’ 안건으로 불렸던 윤석열 방어권 안건에 찬성한 위원들은 여전히 인권위에서 다수파로 건재하다. 안창호 위원장은 이후로도 성소수자 진정 등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사건에 개입하고, 소수자 혐오와 내란 옹호로 논란이 된 극우 기독교 인사들은 국민의힘 추천을 받아 계속 차관급 상임위원 자리에 도전한다. 급기야 인권위 노조가 위원장의 반인권적 언행을 인권위에 진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인권단체들은 현직 위원 임기종료를 골자로 한 인권위법 개정안을 냈다. 메아리는 없다. 직원 ㄱ씨가 게시판에서 언급한 ‘조급증’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인권위 사무처 최고위직인 사무총장과 국장·부장들의 그때 왜 그랬는가. 계속 침묵하는 게 온당한가.
고위간부들은 아직 답이 없다. 한겨레는 1월9일 ‘윤 방어권 안건 전원위 제출’ 결재를 급히 완료한 이석준 사무총장과 서수정 침해조사국장에게 문자메시지로 의견을 물었다. 답이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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