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울산여지도] 해파랑 10코스, 절리와 귀신고래의 바다
철기문화의 뿌리 말해주는 땅
진상품 정자미역 곽암의 신비

추분이 지나면서 염천 하늘도 청아하다. 가을의 시작이다. 가을이 열리는 시간은 해안도 가을빛으로 일렁인다. 오늘은 울산의 등짝에 올라 동해로 나가는 코스다. 일산해변~현대중공업~남목~주전 몽돌해변~당사항~우가산 까치봉~제전항~정자항까지 19.3㎞ 구간으로 보통 보폭으로 5시간 정도 걸린다.
제법 가을 기분이 나는 아침, 효문사거리에서 시내버스에 올랐다. 일산해수욕장을 출발하는 해파랑길 9코스는 초반부가 지루하다. 일산에서 남목으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 길이다. 그 길의 초반 내내 만나는 현대중공업 담벼락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켜켜이 쌓인 현장이다.
조선조 영조 27년 균역법 시행으로 감소된 세비를 충당하기 위해 조선 정부에서는 권문세족이 사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어장·염분·미역 밭을 국유로 환수했다. 이 때 곽암도 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에 의해 국가로 환수됐다. 문제는 환수 후 벌어졌다. 조정에 귀속된 곽암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3년 내내 미역의 착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흉작이 이어졌다. 강동어민들의 원성을 들은 어사 박문수가 조정에 건의, 바위 하나를 다시 돌려주자 그 때사 미역줄기가 줄줄이 뻗어났을 만큼 영험한 바위다. 바로 그 미역, 질기고 깊은 맛이 물컹거리는 감칠맛 때문에 시베리아 오츠크 돌아 동해로 미끄러진 귀신고래는 정자를 찾아 새끼를 낳고 젖을 주기 위해 산후조리 내내 미역을 뜯어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옛사람이 아이 낳은 산모에게 미역국을 끓여줬다는 설은 전설이 아닌 사실이다.
무려 2,000만년 전, 한반도 남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흔적의 일부가 울산과 경주, 동남해안에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까마득한 날 하늘이 처음 열리고 온 천지가 뻘건 불기둥이 휘몰아칠 때 동해는 그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 천지간을 뿌연 운무로 가득 채웠다. 마그마가 흘러 잠시 멎고 쉬어간 곳에 남긴 자국, 육각형의 기둥이거나 팔각형 넓적 단층으로 갈라지고 솟아나거나 드러누운 자태가 기묘함 그 자체다.
정자부터 양남까지 불쑥불쑥 자리한 주상절리(柱狀節理)다. 정자 화암바다와 경주 양남바다에 드러누운 수평의 주상절리는 그 기묘함이 지구상 드문 형상으로 유네스코 지질보호 대상에 이름을 올릴 준비 중이다. 그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1.7㎞가 해파랑길 10코스의 심장이다.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나 갓 퇴적된 뜨거운 화산재 등이 급격하게 식으면서 만들어지는 균열이다. 지질학적으로 절리는 암석이 완전히 식은 뒤 지표로 올라오면서 부피 팽창을 이야기한다. 세상에 흔한 수많은 절리 가운데 주상절리가 으뜸인 것은 만들어지는 과정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울산의 끝자리 지경을 지나 양남으로 오르면 탈해왕을 만난다. 울산 달천에 철의 왕국이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0년쯤 전 어느날, 동해바다 아진포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바다에 백년을 살던 노파 아진의선(阿珍義先)이 까치떼에 휩싸인 궤짝을 발견했다. 수상한 상자를 열자 사내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파가 사내아이를 7일 동안 보살펴 주자, 놀랍게도 그 아이가 스스로 입을 열어 "나는 본디 용성국(龍城國)사람으로 왕비에게서 알로 태어나 버림을 받아 이곳에 닿았다"고 읊었다. 바로 훗날 남해왕의 사위가 되는 석탈해 이야기다. 울산 지나 경주 양남 바닷가에는 석탈해 이야기가 공원의 콘텐츠로 펼쳐져 있다.
흔히 우리는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철의 지배자는 신라다. 그 뿌리가 바로 아진포로 상륙한 철의 부족 단야였고 그 세력이 울산 달천의 철광석을 기반으로 신라의 국력을 키웠다. 석탈해가 이끌고 내려온 단야족은 철을 다루던 북방계다. 이들이 사로국의 세력과 결합해 초기 부족국가에서 업그레이드 하려던 서라벌 세력을 신라로 키웠다. 울산지역 제철 유적은 모두 54곳이나 된다. 철기의 역사가 기원전 2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역사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울산에서 발견된 철기문화의 독창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철기문화는 중국 한나라 이후 대륙에서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울산 달천 철장의 야철장 유적을 발굴한 이후에는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정도가 됐다.
문제는 역사학계의 태도다. 학계는 철기문화의 이동 경로나 뿌리에 대해 달천철장의 기원설을 다시 적어야 하지만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그냥 전설이거나 신화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이없는 일이다. 석탈해 이야기는 지어낸 것으로 치부할지라도 달천과 울산의 수많은 야철유적은 온전한 팩트이자 역사적 실증이다. 정말 궁금한 것은 달천철장을 발견한 세력과 그들의 뿌리는 어디인가에 있지만 여전히 이와 관련된 명확한 기록은 없다. 연구자들은 파고들지 않았고 그냥 덮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석탈해다. 탈해왕으로 불리는 석탈해는 반구대암각화에서 시작되는 인류의 이동경로와 해양문화와 대륙문화의 연결고리를 확인해 주는 놀라운 증좌다. 석탈해식 난생설화는 시베리아 동단, 캄차카반도부터 유라시아 중심, 알타이를 거쳐 훈족의 말발굽이 닿던 동유럽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초기 신라 왕국의 지배계층이 광활한 대륙의 후예들로 그들의 철 제련술과 철제 무기가 왕국의 튼튼한 뒷배가 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두 개의 산봉우리와 천하일품의 절경을 끼고 돈 해파랑 9코스의 종착지는 정자항 입구다. 5시간의 제법 긴 길이었지만 가을 마중을 간 해안은 차분했다. 이제 곧 가을 빛이 바다에 물들면 겨울을 준비하는 야트막한 봉우리들이 웅성거리고 몽글거리고 때로는 쭈빗거리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할 태세다. 다음 코스는 경상북도로 향하는 길이다. 완연한 가을빛과 함께할 동해 제일의 해안선이 벌써 가슴을 뛰게 한다.
두 개의 산봉우리와 천하일품의 절경을 끼고 돈 해파랑 9코스의 종착지는 정자항 입구다. 5시간의 제법 긴 길이었지만 가을 마중을 간 해안은 차분했다. 이제 곧 가을 빛이 바다에 물들면 겨울을 준비하는 야트막한 봉우리들이 웅성거리고 몽글거리고 때로는 쭈빗거리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할 태세다. 다음 코스는 경상북도로 향하는 길이다. 완연한 가을빛과 함께할 동해 제일의 해안선이 벌써 가슴을 뛰게 한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