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가는 ‘봉암연립주택’...입주민들은 왜 떠나지 못할까?
떠날 수 있어도 남는 사례도
시, 임대주택 이주 계획대로

봉암연립주택(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은 오래전 곰팡이에 뒤덮여 원래 색을 잃었다. 얼룩이 겹겹이 번져 숯가루를 바른 듯 새까맣다. 다가서면 곰팡내가 건물 바깥에서부터 코를 찌른다. 안팎으로 눅눅한 공기까지 뒤섞여 숨조차 쉬기 답답하다.
언뜻 사람 발길이 끊긴 폐가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집체가 기울고 벽이 갈라져도 일상은 이어진다. 긴급안전점검에서 '불량' 주택 판정이 나와도, 심지어 임대주택 이주 행정명령이 떨어져도 입주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틴다. 그들은 왜 무너져가는 집을 떠나지 않는 걸까. ▶8일 자 11면 보도
◇사유재산 잃을 수 없다는 입주민들 = "평생 일군 자산은 이 집 하나뿐이다. (시 매입 등을 통한) 보상 없는 이주는 못 한다. 외벽이 깨지고, 비가 새도 살 수 있다. 절대 집에서 나갈 생각이 없다."
78세 할머니 ㄱ 씨는 40년 전 봉암연립주택에 2000만 원 돈을 내고 입주했다. 이곳에서 홀로 아들 하나, 딸 둘, 이렇게 삼 남매를 키우며 식당을 전전했다. 월남전 참전 용사인 남편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늘 생활비 문제로 허덕였다. 저축은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을 돌보지도 못했다. 힘들게 살다 보니 수중에 남은 돈이 없다. 앞니가 빠져도 병원갈 여력이 되지 않는다. 없는 채로 산다. 출가한 자식들은 각자 살기 바빠 도움 줄 여력이 없다.
"창원시는 우리에게 임대주택으로 가라고 말하지만, 나로서는 매달 충당해야 할 임차료도 내기 힘들다. 돈이 있어야 월세도 내지, 나와 같은 사람들은 방도가 없다. 시가 우리 집을 사서 보상해주면 모를까, 그런 대책 없이 나가기 힘들다."
40년 전 봉암연립주택에 자가로 입주한 82세 할머니 ㄴ 씨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남편과 함께 농사·공장 일을 하며 네 자녀를 키웠다. 남편과 사별한 지는 22년째다. 홀로 연금에 의지해 생계를 잇고 있다.


◇나갈 여력 되지만 남겠다는 이도 = 형편이 어려워서만은 아니다. 떠날 능력이 있는데도 남는 이도 있다.
조성진 봉암연립주택 비상대책위원장 말이다. "우리 가족은 이 동네에서 4대째 살고 있다. 봉암연립주택이 들어서기 전 기와집이 있을 때부터다. 다른 동네에 집을 새로 얻어 나갈 형편은 된다. 다만 고향을 등지고 갈 수 없어 여기에 있다. 동네 형님들, 어르신들도 살아계신다."
또한 보상 문제로 떠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워서 나가기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지만, 공짜배기로 돈을 받아먹으려고 이율 배반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돈 문제로 남아있는 거다. 개인 이기주의다. 결과적으로 보상 이야기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주택 관리가 되었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주민들이 재건축이 이뤄질 줄 알고 태만했다. 어차피 재건축할 건데 무엇 하러 손을 대느냐면서 안일하게 대처했다."
창원시는 가구별 사정이 어떻든 지난 2~8월 진행된 긴급안전점검 결과를 토대로 E등급 판정받은 주민들에게 우선적으로 임대주택 이주를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등기 수령을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봉암연립주택 8개동 가운데 4개동은 D등급, 나머지 4개동은 E등급을 받았다. D등급은 긴급 보수·보강 필요, E등급은 사용금지·개축 필요 등급이다. 현재 129가구 중 65가구(107명)가 거주 중이다.
창원시는 지난 26일 기준 이주 희망 가구를 12가구로 집계했다. 하지만 실제 신청은 1가구뿐이다. 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23가구, 시영 임대주택 5가구 등 28가구를 확보한 상태인데, 이달 안에 추가 신청이 없다면 해당 임대주택은 다른 시민에게 돌아간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이주 안내는 계속하겠지만, LH 쪽에서 이미 확보된 주택을 계속해서 비워둘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추후 새로 공가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 9월 말까지 주택정책과에서 주민들에게 연락해 이주 신청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석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