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에 습격당한 도시 같다”…‘들개’섬으로 전락해버린 최고의 휴양지 [푸디人]
오랜만에 ‘푸디인’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맛있는 이야기가 아닌 우울한 이야기로 시즌2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처럼 휴가다운 휴가를 쓰기 위해 9월 중순 사이판에 다녀왔는데요. 기대와 달리 사이판은 더 이상 ‘환상의 섬’이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함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사이판의 남다른 맛과 풍미를 즐기고 싶었지만 시선은 지역주민들한테 강탈당한 카지노, 문 닫은 지 수년이 지난 가게들, 텅텅 빈 호텔과 리조트 등 망해가는 지역경제에 꽂혔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은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홀렸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봅니다.
구독자 40만명이 넘는 여행 유튜버 ‘세계는요지경 YOZIGYEONG’이 ‘한때 신혼여행 선호도 1위, 사이판은 왜 몰락했을까?’라는 콘텐츠로 최근 3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왜 사이판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일까요!


그러나 제가 묵었던 마리아나비치 리조트에 들어서자 황량한 사이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조트 내에는 투숙객이 거의 없어 재벌 회장님마냥 리조트를 통째로 전세 낸 듯했습니다. 리조트 후기가 담긴 블로그에서는 ‘귀여운 색감의 객실 내부’, ‘합리적이고 많은 즐길거리’라고 설명했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시설은 노후화돼 있었고 새하얗던 샤워필터는 단 4일만에 짙은 흙빛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리조트 바로 앞 사이판의 최고 번화가, 가라판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습니다.
영업을 한참이나 안했는지 문이 닫힌 것은 물론 건물 내부는 텅텅 비었으며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었습니다. 야릇한 마사지 가게와 띄엄띄엄 문을 연 바만이 옛날의 영광을 간신히 읊어주고 있었습니다. 폐허가 된 건물에는 주인이 버리고 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덩치 큰 개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연신 짖어대 삭막함을 더했습니다. 밤에는 불빛이 없어 나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으니 여기가 과연 유명 관광지인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가라판 어디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카지노 건물이 흉물스럽게 약탈당한 채 방치된 모습을 보는 순간 사이판의 현 상황을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카지노는 ‘임페리얼 퍼시픽 리조트(Imperial Pacific Resort)’로 2017년 개장 당시 70개의 테이블 게임과 190대의 게임 기계를 갖추는 등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사이판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카지노가 문을 닫고 일부 지역주민들이 카지노를 털어가 지역사회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카지노는 지금 유리창이 깨지고 문은 뜯겨 나갔으며 실내는 난장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한때는 금빛으로 도배된 화려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사이판 경제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현재 이 리조트가 다른 기업에 팔렸다고 하는데, 언제 다시 영업에 나설지는 감감무소식입니다.
게다가 사이판에 가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별빛투어’는 현지 업체의 폐업으로 즐기지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이판 여행 예약사이트 ‘미친사이판’을 통해 별빛투어를 예약했는데 첫날에는 ‘현지업체의 사정으로 일정이 취소가 되어 다음날로 진행하겠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에는 황당하게 ‘현지업체가 장사를 안하는 것 같다’며 환불을 해주겠다고 읍소해왔습니다.
예약 사이트가 별빛투어를 진행하는 현지업체랑 제대로 소통이 안되는 점도 문제지만 관광객이 없어 문을 닫을 정도라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북마리아나제도 수도인 사이판의 인구는 지난 10년간 15% 가까이 감소했습니다. 미국 연방 센서스국에 따르면 사이판 인구는 2010년 약 4만8220명에서 2020년 4만3385명으로 줄었으며, 최근 추정치(2024년)는 4만명 초반에 불과합니다. 같은 기간 북마리아나제도 전체 인구 역시 5만3000명에서 4만4000명대로 감소했습니다.

높은 관광업 의존도 역시 사이판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입국 제한이 장기화되면서 고용이 급감했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은 주민들이 괌이나 미국 본토로 떠났습니다.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반중 정책 강화로 ‘큰 손’이었던 중국 관광객이 씨가 마른게 사이판 관광산업을 붕괴시킨 주범으로 꼽힙니다. 올들어 관광객 수는 예년 수준과 비교해 한참 저조한 상황입니다.
마나가하 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예전에는 마나가하 섬을 찾는 관광객의 70%가 중국인이었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나마 한국 관광객들이 사이판을 찾고 있지만 가성비 좋은 동남아 여행지가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다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서 점차 발길을 끊는 추세입니다. 실제 2019년 사이판을 찾은 한국인 방문객은 24만 1776명이었으나 2024년에는 17만 8000명에 그쳤습니다. 현재의 영광에 취해 지속적인 투자를 게을리한 사이판의 잘못도 빼놓을 순 없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인구 감소가 경제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노동력 부족은 투자 유치를 어렵게 만들고, 소비 기반이 줄어드는 현상까지 낳기 때문입니다. 북마리아나제도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제도 개편, 관광시장 다변화, 의료·교육 인프라 확충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반전은 쉽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우리나라도 인구 감소 추세를 반등시키면서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균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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