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은데 밉기도 해’…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그게 우정

김민제 기자 2025. 9. 2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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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감정선으로 공감 이끈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상연역 박지현 “상연에게 은중은 유일하니까요”
은중역 김고은 “첫눈에 반한 거죠, 상연이한테”
드라마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너는 참 좋겠다.”

초등학생 은중은 우유 배달을 하는 엄마를 따라 옆 동네의 한 신축 아파트에 방문한다. 좁고 허름하고 화장실도 밖에 있는 자신의 집과 다르게 방들은 다 널찍하고 화장실도 두개나 있는 집이었다. 부러운 마음에 은중은 책가방 속 포스트잇을 한장 뜯어 “너는 참 좋겠다”고 써붙인다. 그곳은 은중과 앞으로 30여년간 지지고 볶는 우정을 이어가게 될 상연의 집이다. 은중이 포스트잇에 적은 그 말은 은중과 상연이 서로를 향해 오래도록 품게 될 마음이 된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지난 12일 공개된 넷플릭스 15부작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은중과 상연 두 친구의 선망과 원망, 애정과 질투가 뒤섞이며 길게 이어져온 우정을 그린 드라마다. 보통의 오티티(OTT) 드라마와 다르게 강렬하고 자극적인 드라마가 없어도 친구 때문에 울고 웃던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며 큰 반향을 얻었다.

40대의 상연이 은중에게 스위스로 가는 조력사망 여정에 동참해달라 부탁하며 시작된 드라마는 30여년간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를 깊이 조명한다. 은중은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상연을 부러워하고, 상연은 어디서나 사랑받는 듯한 은중을 보며 열등감을 느낀다. 한편 상연에게 은중은 자신의 아픈 구석을 꺼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가족, 연인보다 기대고 싶은 사람이다. 은중은 자신의 것을 빼앗으려는 것 같은 상연에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꽁꽁 숨긴 상연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지난 22일과 25일 서울 종로구의 카페에서 ‘은중과 상연’의 두 주인공 김고은, 박지현을 만나 ‘은중과 상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고은은 드라마의 화자이자 상연을 넓은 마음으로 보듬는 은중을, 박지현은 상실감과 결핍으로 마음이 뒤틀린 와중에도 잘 살아내려 애쓰는 상연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도, 드라마를 소개하는 제작진도 은중과 상연의 관계를 한단어로 정의 내리지 못한다. 가족, 친구, 연인의 모습이 다 섞여 있다. “은중이는 상연이한테 첫눈에 반했다고 생각해요.” 은중에게 상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김고은은 이렇게 답했다. “샘도 있었겠지만 부러움이 더 큰 존재였다고 생각해요. 좋아하고 동경하기 때문에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 행동으로 인해 상연이 화가 나기도 했지만, 상연에 대한 은중이의 그런 마음으로 둘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드라마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박지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수식할 수 있는 여러 단어 가운데 한단어를 꼽자면 ‘유일함’이라고 했다. “상연에게 있어서만큼은 은중이는 유일한 존재예요. (결과적으로) 상연에게는 가족, 연인, 친구가 다 존재하지 않잖아요. 그 와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게 은중이인 거죠. 상연이의 대사 중에 ‘(죽은) 오빠한테, 엄마한테 해줄 수 없는 거 살아 있는 너한테는 해줄 수 있잖아’라는 게 있는데, 그런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관계인 것 같아요.”

드라마 ‘은중과 상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을 보며 두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된다는 반응만큼이나 인물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또한 많다. 자신의 것을 뺏고 괴롭히는 상연을 끝내 받아주는 은중을 답답해하거나 부러움과 질투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상연을 보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특히 상연에 대한 엇갈린 반응이 많았는데 박지현은 자신의 캐릭터를 위한 항변을 하기도 했다. “대본이나 책을 읽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건 어떠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못되고 미운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최선의 선택인 경우가 있으니까요. 상연이는 말을 반대로 하고 솔직하지 못한 친구인데, 자신의 마음을 다 내보이지 못한 채로 눌러 담아서 이야기를 하는 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상연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배우 김고은.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은 두 여성의 우정을 소재로 해, 특별한 사건보다는 두 인물의 관계에 집중한 드라마다. 김고은과 박지현 두 배우의 연기력이 드라마의 완성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박지현은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이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게 만들었고 김고은은 박지현이 마음껏 연기할 수 있도록 받아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고은이 집중한 것도 리액션이었다. “액션보다는 리액션에 집중했던 역할이에요. 처음 역할을 받았을 때 이것을 나에게 준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해내야 하는 몫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어요. 15부작 드라마라는 긴 호흡의 작품에서 나의 롤은 중심을 잡아주고 긴 호흡을 이끌어가는 것이었다고 생각했고, 이걸 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역할에 다가갔죠.” 박지현은 김고은과의 연기 호흡을 이야기하며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김고은이라는 배우가 펼쳐놓은 무한한 무대에서 박지현이 날뛸 수 있었다’는 글을 봤는데 정말 공감됐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었죠. 제가 어느 방향으로 무너지든 언니가 앞, 옆, 뒤에서 다 받쳐줬어요. 저에게 자신감을 만들어준 게 김고은이라는 사람이죠.”

배우 박지현. 넷플릭스 제공

마지막 순간 은중과 함께한 상연은 편하게 눈을 감았을까? 은중은 상연을 떠나보낸 뒤 잘 살 수 있을까? 15부작을 몰입해서 본 시청자들이라면 품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이와 관련해 박지현은 한가지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제가 밸브를 열고 나서 죽음을 향해가는 순간이었는데요. 마지막쯤에 (고은) 언니가 울면서 ‘상연아 사랑해’라고 했거든요. 상연이 입장으로서는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죠. 상연이는 유년 시절부터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누구한테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 친구인데 마지막 순간에 은중이가 그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김고은은 은중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아는 사람인 만큼 상연을 떠나보낸 뒤에도 씩씩하게 잘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은중이는 상연과의 이별을 아프고 슬프게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상연이 자신에게 동행하자고 한 것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결국 고맙다고 느낄 것 같고요. 이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었던 것을 함으로써 (상연을) 잘 보내줄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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