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와 치파오로 빚어진 ‘로미오+줄리엣’ 선보인 홍콩발레단
박성준 2025. 9. 28. 10:37
한때 ‘동양의 보석’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홍콩. 문화·예술에서도 이소룡·성룡·장국영·왕가위 등이 활약하던 전성시대를 누렸다. 여러모로 그 위상이 축소됐지만 자유분방했던 항구도시의 화양연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국내 초연됐다. 1979년 출범 이후 처음 우리나라를 찾은 홍콩발레단의 ‘로미오+줄리엣’이다. ‘홍콩위크 2025@서울’의 공식 개막작으로 26, 27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첫 선 보인 이 작품은 이탈리아 도시 베로나를 배경삼았던 셰익스피어 고전을 1960년대 홍콩으로 옮겼다.

네온불빛이 화려한 밤거리와 관광명소였던 ‘점보 레스토랑’, 그리고 마작방(麻雀房) 등에서 삼합회를 배경삼은 재벌 가문 영애 줄리엣과 명문가 출신 로미오의 비극적 사랑이 펼쳐진다. 홍콩발레단 예술감독 셉팀 웨버의 안무·연출작으로서 프로코피예프 음악에 홍콩 특유의 문화적 디테일을 더해 고전을 새로운 현대물로 탈바꿈시켰다. 전통 발레 의상 대신 화려한 치파오가, 펜싱 대신 목봉과 쿵푸가 등장하는 격투 장면이 이채로우면서 흥미진진하다.
이야기 역시 큰 줄기는 원작을 따라가나 설정에선 홍콩화(化)가 이뤄졌다. 두 연인을 ‘붉은 실’로 맺어주는 이는 신부가 아니라 로미오의 쿵푸 사부라는 식이다.


특히 쿵푸와 무술은 단순한 설정 이상이다. 쿵푸 마스터 등에게 지도를 받아 쿵푸 동작의 정수를 무용과 결합시켜 만들어낸 춤사위는 액션적 스펙터클을 선사하지만 발레적 섬세함은 다소 약화된다. 로미오 친구 리틀맥과 삼합회 두목 타이포의 대결은 매우 사실적이다. 극 초반부터 무모한 청춘을 실감나게 연기한 리틀맥의 그다운 죽음은 작품의 밀도를 확 높여준다.
정겨운 홍콩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거리에서 펼쳐지는 춤의 산만할 정도의 화려함마저 홍콩 정서를 반영한 연출로 읽힌다.


많은이들의 사랑을 받은 ‘기사들의 춤’은 이 작품에서도 멋진 군무로 펼쳐진다. 또 줄리엣은 발코니 대신 높은 계단에서 내려와 사랑을 고백하는 로미오와 아름다운 파드되(이인무)를 춘다. 로미오는 매끄러운 회전과 풍부한 리프트로 그의 감정선을 드러냈다. 초반의 수줍고 순진했던 줄리엣은 사랑에 빠진 후 과감한 여성으로 변하는 입체적 연기를 펼쳤다. 두 연인의 파드되는 이후 줄리엣의 침실 등에서 두 번 더 펼쳐지는데 비극이 완성되는 묘실에서 가사(假死) 상태인 줄리엣을 로미오 홀로 리드하는 마지막 파드되는 여느 작품에선 보기 힘든 독창적 춤이었다. 파격적이나 연인을 잃은 고통과 애절함이 시각적 이미지로 각인되며 비극의 무게를 더했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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