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체질을 벗을 때가 됐다
파행 정국 원인은 여야 원내대표 합의 파기
국정 책임 외면하고 싸움 몰두하는 집권 여당
언론의 잇따른 경고…대통령 지지율도 하락

논어에는 공자의 정명론이 있습니다. 모든 개념은 그 개념에 걸맞은 실질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테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합니다.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개념과 실질이 부합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5·18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가 정당을 만들어 민주정의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전두환의 민정당은 민주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았습니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청청여여야야언언”이라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청와대는 청와대다워야 하고, 여당은 여당다워야 하고,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고, 언론은 언론다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청와대가 청와대답지 못하고, 여당이 여당답지 못하고, 야당이 야당답지 못하고, 언론이 언론답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라가 어지러워집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여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여당은 더불어민주당입니다. 1955년 창당한 민주당이 뿌리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이 사사오입 개헌을 하자 야당이었던 민주국민당, 자유당 내 개헌 반대파 등이 손잡고 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민주당은 1960년 4·19 혁명 뒤 2공화국에서 잠시 집권했지만 1961년 박정희 소장의 5·16 쿠데타로 다시 야당이 됐습니다. 민주당은 매우 오랫동안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 치열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에도 참여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이뤄냈습니다.
그래서일 것입니다. 지금도 민주당에는 야당 시절의 유전자와 체질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적대와 투쟁에 더 익숙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에 민주당이 정면으로 맞서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야당 유전자와 체질 덕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제 여당입니다. 6·3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고 국회에서도 절대다수입니다. 국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대와 투쟁은 내려놓고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포용의 정치를 펼쳐야 합니다.
국회가 지난 9월 25일부터 본회의장에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국회법 개정안,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에 국민의힘이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의 법안 반대는 명분이 별로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궐위 대선에서 당선됐습니다. 정권 인수 절차도 없이 취임했습니다. 그런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조직을 조금 바꾸겠다는데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실익도 없습니다. 무제한 토론은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24시간마다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네 개 법안 처리를 나흘 동안 지연시킬 수 있을 뿐 막을 방법이 없다는 얘깁니다.
무제한 토론에서 어느 의원이 어떤 내용을 말하는지 대다수 국민은 관심이 없습니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본회의장을 지키는 의원들도 별로 없습니다. 맞교대로 의장석을 지켜야 하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학영 국회부의장만 고달플 뿐입니다.

4개 법안 무제한 토론이 끝나는 9월 29일 이후가 더 문제입니다. 국민의힘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모든 법안에 무제한 토론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주말마다 장외집회도 이어갈 것 같습니다.
물론 국민의힘의 협조가 없어도 민주당이 국회에서 법안과 예산안을 처리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국 파행이 계속되면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증오와 혐오의 정치가 횡행하게 됩니다. 정치 부재의 피해는 결국 온 국민에게 돌아옵니다.
정국 파행과 정치 부재로 인한 손해는 여당과 야당 중에 어느 쪽이 더 클까요? 국민의힘은 별로 잃을 게 없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훨씬 더 손해라고 봐야 합니다.
당장 정부조직법 개정에서 금융조직 개편이 통째로 빠졌습니다. 정부 조직 개편은 정권 초기가 아니면 밀어붙이기 어렵습니다. 이해관계가 걸린 관료들의 반발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금융조직 개편이 과연 가능할까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국 파행과 정치 부재를 초래한 정치적 책임도 국민의힘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 쪽이 훨씬 더 큽니다. 지난 9월 10일 김병기 원내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추진하던 특검법 개정안 내용을 완화하고 국민의힘은 정부조직법 개정에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과 당원들의 반발이 쏟아지자 정청래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은 강경론에 올라타서 판을 깨버렸습니다. 만약 정청래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이 원내대표들의 합의를 받아들이고 당내 설득에 나섰더라면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을 것입니다. 무제한 토론과 국민의힘 장외투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최근 정국이 경색되자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원내대표 합의를 받아들였어야 한다”고 뒤늦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 부승찬 의원, 서영교 의원, 정청래 대표가 밀어붙인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론도 민주당에 점점 더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24일 최고위원회에서 나온 정청래 대표의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 발언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사법부 장악 의혹을 확산시켰고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동정 여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강경한 태도에 언론은 대체로 비판적입니다. 한국일보 최문선 논설위원이 9월 25일 치 신문에 “민주당이 부추기는 ‘윤석열 어게인’”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당원 심기 살피느라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파열음을 내고, 의원들이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대법원장 청문회를 밀어붙이고, 검찰·사법개혁 신중론을 목청으로 찍어 누른다. 즐기는 건지, 속수무책인 건지, 이 대통령은 거리를 두고 방관한다.”
“‘윤석열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여권이 폭주를 멈추지 않으면 그런 목소리가 커질지도 모른다. 거기 편승한 국민의힘이 반성과 쇄신없이 엉겁결에 지지율을 회복하고 여권이 분열한다면 내란 종식의 동력이 뚝 떨어지고 정치는 더 막장 싸움판이 될 것이다.”
경향신문 정제혁 논설위원도 9월 25일 치 신문에 “민주당은 다수연합의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온전한 내란 극복은 다수 국민이 동의할 만한 방법과 태도로만 가능하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내란 극복과 사회통합이 한길에서 만날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의 목소리는 엇갈립니다. 친이재명 중진 김영진 의원이 25일 ‘엠비시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사위의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를 “급발진”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법사위 간사 김용민 의원은 다음 날 같은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한가한 상황 인식”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25일 ‘에스비에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야당을 먼저 비판한 뒤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여당은 정부와 함께 국정을 책임집니다. 그래서 여당은 여당답게 여당의 태도를 잘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절제가 갖고 있는 미덕이 크다. 이런 얘기를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수도권 재선 의원은 “국민이 우리를 오만해졌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겁난다”며 “지도부가 지금 상황을 바라보는 인식이나 상황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이런 우려는 여론조사 수치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26일 발표한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는 55%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민주당 지지도도 38%로 대선 이후 가장 낮았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한국갤럽은 “이번 주 부정 평가 이유 면면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압박과 진실 공방, 내란 재판부 변경 등 여당 주도 사안들이 대통령 평가에도 반영된 듯하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갤럽 조사에는 내란 재판 문항이 있었습니다. “현 재판부를 통해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가 41%, “내란 전담 재판부를 설치해 이관해야 한다”가 38%였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는 27% 대 64%로 “이관해야 한다”가 많았고, 국민의힘 지지자는 61%대 10%로 “현 재판부가 계속해야 한다”가 많았습니다. 무당층은 41% 대 26%로 “현 재판부가 계속해야 한다”가 많았습니다.
정청래 대표가 24일 최고위원회 이후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론이나 내란전담재판부 얘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도 여론의 이런 흐름을 의식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정청래 대표는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정치는 역동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만하거나 방심하면 선거에서 꼭 이변이 일어납니다. 2016년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이 그렇게 몰락했습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입니다. 이제 여당 체질로 좀 바뀔 때도 됐습니다. 그래야 윤석열 내란을 확실히 종식하고 민주당 재집권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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