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 안 웃기는 충청도 출신 두 사람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5. 9.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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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왼쪽)와 장동혁. [퍼플렉시티 합성]
충청도 사람들은 말이 느리다. 언제 한번 소개한 것처럼 언론인 고(故) 남재희는 이것을 느긋함이 아니라 체득된 ‘생존 기술’로 해석했다. 삼국시대 때 충청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격전장이었는데 ‘너 누구 편이여?’라고 물었을 때 대답을 잘못하면 목숨이 달아날 수 있었다. 무조건 느릿느릿 즉답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말은 느리고 눈치는 빨라야 한다.

요사이는 어떤지 몰라도 충청도 여론조사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이 정설처럼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가 불일치할 때가 많아서 생겨난 말이다. 충청도 사람한테 ‘너 누구 편이여?’하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뚱한 얼굴로 ‘왜유?’ 할 것이다. 그러나 투표는 칼 같아서 오만한 정당을 벌주는 것은 늘 충청도다. 충청도에서 지면 다수당은 바이바이다.

나는 대학때 하숙을 하면서 8도 사투리의 미세한 차이까지 간파하는 별 쓸모없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출신 지역과 성격 사이엔 별 상관성을 못 느꼈다. 다만 충청도 출신 중에 분위기 메이커가 많았던 기억은 있다. 충청도 출신이 총무를 맡으면 하숙집이 잘 돌아갔다. ‘만날 반찬이 똑같다’ ‘부엌에서 라면 좀 끓여 먹게 해 달라’ 같은 민원을 수렴해서 주인 아주머니와 협상하는 기술이 탁월했다.

3김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파국까지 가는 일이 드물었던 것은 충청도 출신 JP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JP는 주로 2인자였다. 젊어서는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고 YS 정권 초기에는 여당 대표, DJ 정권 때는 국무총리를 했다. 처삼촌이자 군 상관인 박정희야 그렇다 쳐도 동세대 YS, DJ 밑에서 아랫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 쉬웠을 리 없다. 속을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기질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JP가 노여움을 표출했다는 기사를 보면 대부분은 다 지나고 나서, 상대가 없는 자리에서 성냈다는 얘기다. 이런 걸 두고 충청도답다고 한다.

개그맨 최양락은 전성기 시절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웃긴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충남 아산 사람이다. 충남 서천 출신의 배우 김응수가 “우리 고향에선 죄다 최양락이여” 라고 하는 유튜브 쇼츠를 보았다. 충청도에선 최양락이 평범해 보일 정도로 평균 유머 감각이 탁월하다는 말이다. 개그맨 중에 충청도 출신이 많다는 것은 여러 통계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주요 방송에 출연하는 코미디언 중 50~60%가 충청도 출신이라는 조사도 있었다. 요컨대 속 얘기 잘 안 하고, 중개 능력이 좋고, 잘 웃기는 것이 충청도 기질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지난달 장동혁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되었을 때 다른 건 몰라도 웃기기는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정청래 의원은 충남 금산, 장 대표는 충남 보령 출신이다. 충청도 사람들이 양대 정당 대표를 동시에 지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안다. ‘평균이 최양락’인 동네 사람들끼리 옥신각신하면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가. 유머1번지 인기코너 ‘괜찮아유’에서 명콤비를 이뤘던 최양락-김학래(충남 천안 출신이다)만큼 웃길 것으로 봤다. 귀여운 톰과 제리처럼.

웬걸…한 달이 넘도록 한 번도 안 웃겼다. 어떻게 충청인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한명은 사변 때 벼락 완장 찬 농투성이처럼 상기된 얼굴에 툭 하면 쌍심지를 돋우고 한명은 히틀러 같은 눈빛으로 쏘아본다. 불안하고 음흉한 눈빛 말이다. 블랙유머도 얼려버릴 표정들이다. 말은 직설법의 귀재들이다.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는데 제 모든 것을…”. 이렇게 속을 활짝 열어 보이는 충청인들을 다 본다.

충청도 출신 총무는 하숙집 분위기를 띄웠는데 두 대표는 신문 정치면을 삭막하게 만들었다. 표독하고,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쩨쩨하고, 은유와 담쌓은 사람들. 충청도에도 여러 인간 군상이 있음을 깨닫고 있다. 어느 지역이나 그런 것처럼.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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