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 승진 꿈꾸던 동생에 ‘월북’ 딱지” 형은 아직도 동생을 보내지 못했다 [세상&]

김아린 2025. 9. 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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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피격’ 공무원 형 이래진氏 인터뷰
지난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21일 경기 안산시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아린 기자

[헤럴드경제=김아린 기자] “형님, 대준이가 배에서 이탈한 것 같습니다.”

2020년 9월 21일 오후 1시 30분경. 이래진 씨는 서해에서 불법 어업을 단속하는 일을 하는 동생이 배에서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곧 해군이 해양경찰과 함께 수색할 거라고 했다. 이씨 동생 고(故) 이대준 씨는 원양어선 선장도 지냈던 해양수산부 경력 공무원. 이씨는 바다 경험이 많은 동생이 수색망이 닿을 때까지 버텨주기를 기도했다.

지난 21일 헤럴드경제와 만난 이씨는 “5년 전 딱 이시간이었다”며 동생 대준씨의 실종 연락을 처음 받은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이씨의 일상은 그때 멈췄다. 이씨는 “하던 일도 포기했고 건강도 잃었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이씨와 가족들에겐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연속해 펼쳐졌다. 해수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주무관인 대준씨는 인천 연평도 해상에서 단속 근무를 하던 중 실종됐다. 바다에서 표류하다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 총격에 숨을 거뒀다. 시신은 소각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자진 월북했다”고 했다.

이씨 기억 속 동생은 해수부 공무원으로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강했다. 어느 날 TV를 보던 이씨는 불법 어선에 탄 중국인 선원들이 우리 단속원들에게 삽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장면을 보고 놀라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위험한데 그러지 말고 내 일이나 도와라’고 하자 동생은 ‘내가 공무원으로 서기관은 못 되더라도 사무관은 해보고 싶다, 되는데까지 해보려 한다’고 하더라”고 이씨는 회상했다. 그러면서 “평소 공무원임을 이렇게 자랑스러워 하고 사무관이 되고 싶다던 동생에게 월북자라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동생이 실종되고 이틀 뒤, 이씨는 당시 수사 라인으로부터 연달아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연평파출소 소속이라고 밝힌 경찰이 “혹시 이대준 씨가 평소 북한을 좋아했느냐”고 물었다. 아직 동생의 생사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화가 난 이씨는 쏘아붙이고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인천해경과 해경 중부청에서도 같은 전화가 왔다.

위로도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이런 전화를 하다니.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직감했다. 그날 이씨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동생이 북한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형의 머릿속에서 ‘왜?’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씨는 “불과 얼마 전 나와 통화했던 동생이 왜? 또 왜 북한이? 믿기지 않았다”고 그 당시를 떠올렸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씨는 가족의 대표로 나서야 했다. 해경이 일주일 만에 ‘실종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해경은 수사와 관련 없는 개인사까지 헤집으면서 월북 시나리오를 언론에 공개했다. 정권이 바뀌고 해경은 월북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며 이전 정부의 발표를 번복했지만 이미 낙인의 상처가 남은 뒤였다.

한동안 포털을 열면 기사가 쏟아졌다. 이씨는 “동생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쓴 수백 개의 댓글이 가슴에 비수로 박혔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이 이러쿵저러쿵 말 때문에 자살하는 심정을 알게 됐다”고 했다. 속이 탄다는 표현처럼 가슴에 뜨거운 멍울이 생긴 것 같았다. 찬물을 들이키고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열댓 개씩 먹었다. 그렇게 해야 울분을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이씨의 마음을 다잡게 해준 건 죽은 동생이 억울함을 두 번 겪게 할 수 없단 생각이었다. “동생을 이렇게 몰아간 사람들을 단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내가 진실을 밝히고 동생 명예 회복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고 쏟아지는 기자 연락이 처음엔 두려웠다. 그래도 닥치는 대로 기자를 만나고 인터뷰를 했다. 가만히 있으면 대신 나서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해경에서 동생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30㎞가 넘는 거리를 헤엄쳐서 월북했다는데도 반박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씨는 투사가 됐다. 집안의 장남인 이씨는 총대를 멨다. “대준이 일은 염려하지 말고 날 믿고 기다리라”고 가족들을 달랬다. 그는 “(가족들이) 나만 바라보는데, 그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동생의 죽음이 대공사건이 되고 정치에 휘말리고 우리 가족이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9월 22일 전남 목포 한 장례식장에서 열린 이대준 해양수산부 주무관의 영결식. 서해어업관리단 동료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김아린 기자

이씨는 어머니가 5남 2녀 형제 중 유일하게 공직에 몸담은 동생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치매 증세 등으로 몸이 약해진 어머니에게 남은 형제들은 차마 대준씨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알리지 못했다. 바다에 단속을 나갔다는 대준씨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끝내 아들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지난 2022년 7월 별세했다. 이씨는 “어머니가 동생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놀라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9월 22일. 전남 목포시 어업지도선 부두에서 유해 없는 장례식이 치러졌다. 이씨는 “동생이 남겨둔 어린 조카가 이즈음 아빠(대준씨)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어린 것이 아빠가 생일선물을 사 올 거라고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5년이 지났지만 이씨와 가족들에겐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사고 난 해역은 중국 어선이 오가고 북한과 인접한 곳. 정부의 감시망이 촘촘할 거라 생각했다. 이씨는 ‘현직 공무원인 동생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하려 할 거다’라고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믿음은 무너졌다. 그 이후 펼쳐진 상황은 “끝없는 은폐뿐이었다”고 이씨는 주장한다.

이씨는 정부의 월북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며 청와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21년 11월 유족의 손을 들어주며 군사기밀을 제외한 고인의 사망 경위 등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법원의 정보공개 결정에 항소하고 문 전 대통령 퇴임 전 사건 관련 기록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봉인했다.

이씨는 “막강한 국가 권력에 진실이 가로막힌 것 같아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했다.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문 정부 안보라인에 대한 재판은 2023년 1월 시작돼 2년을 훌쩍 넘겼으나 아직 1심 선고도 하세월이다.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형 이래진씨가 2022년 4월 본지 기자에게 서해 해도를 설명하고 있다. [헤럴드DB]

박 전 원장이 지난 4일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에서 서해 사건 공소를 취하해야 한다”고 직접 요구하는 것을 보고 이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동생 재판에 대한 소식도 기사로 알게 되는데”라며, 박 전 원장이 현재 검찰을 관장하는 법제사법위원회와 국정원이 피감기관인 정보위원회 위원인 것은 “이해충돌 아니냐”고 자신 가족들의 처지와 비교해 따졌다.

이씨의 사무실 한쪽에는 서해 해도가 걸려있다. 동생을 수색하는 배에도 직접 올랐던 이씨는 해도에 연필로 동선을 그려가며 동생의 마지막 순간을 곱씹고 분석했다. 그는 “가족이 끔찍하게 사망한 그 트라우마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상실감과는 다르다”고 했다.

이씨는 “우리 가족이 알고 싶은 건 동생이 죽기까지 나라가 해야 할 일을 했는지, 단 하나다”고 했다.

검찰은 최근 서해 피격 사건에서 문 전 대통령의 직무유기와 명예훼손 혐의를 불기소 처분했다. 불기소 사유는 증거 불충분이다. 고소 이후 2년 9개월 만이다. 나머지 직권남용과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는 계속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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