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통령이라면 짜증날 것"... '정청래 민주당'에 묻힌 외교전 [노변정담]
정청래, 딴지 게시글에 유엔 연설만 쏙 빼
李 취임 첫날도, 100일에도 '잡음' 드러내
"고관여층에게만 어필" 의원들 부글부글
제어 방법 마땅찮아... 당정 지지율 동반하락
편집자주
주말 아침, 다정하고 친근하게 한국 정치 이면의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갈등과 분노가 아닌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내가 이재명 대통령이라면 정말 짜증날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 24일 통화에서 최근 당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193개 회원국 정상급 인사들을 대상으로 정부의 대북 구상을 담은 '엔드(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집권여당이 이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앞다퉈 내세워도 모자란 판에, 한국에선 유엔총회에 참석한 이 대통령의 뉴스가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이 주도하는 이른바 '조희대 때리기'에 묻혀버린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취임 후 50여 일이 지난 정 대표에게 강성 당원들의 환호가 집중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민주당 의원들의 속내는 복잡했다.
유엔총회 발언 쏙 뺀 정청래

이 대통령은 이날 회원국 정상 중 7번째 연설자로 북한과의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를 통해 궁극적으로 비핵화(Denuclearization)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인 엔드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국제 무대에서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의 방향성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교류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칫 북핵을 용인해 주는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해야 할 과제도 떠안았다. 대내외 여론전 등 집권여당의 지원사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 대표를 위시한 민주당은 '조희대 블랙홀'로 내달렸다. 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국민들은 헌법 유린, 삼권 분립 훼손, 부정 비리, 국정 농단, 내란 사태 등 불의한 대통령들을 다 쫓아냈다"며 "대법원장이 뭐라고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에 대한 언급(1,098자)도 있었으나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비판(1,728자)에 묻혔다. 정 대표는 자신이 주로 활동하는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오늘 최고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리면서 조 대법원장 관련 발언만 게시했다.

정 대표가 힘을 실어준 국회 법사위는 오는 30일 '조희대 청문회'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정 대표는 비공개 3선 의원 오찬 간담회에서 "지난 5월에도 (법사위가 마련한) 청문회에 안 나왔다. 이번에는 나오겠느냐"며 조 대법원장의 불참을 예상하면서도 "(지도부에) 사전 보고는 안됐지만 이왕 이렇게 됐으니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 대표가 이 대통령의 주요 '디데이'를 희석시킨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대통령 취임일에도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정 대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법관 증원법을 강행 처리하려고 했다. 당시 박찬대 원내대표가 이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면서 저지했다. 이 대통령이 주인공이 돼야 할 취임 100일에도 민주당 '투톱 갈등'이 불거졌다. 김병기 원내대표가 3대(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수정과 정부조직법 처리 협조에 대해 국민의힘과 합의했으나, 이에 정 대표가 "지도부의 뜻과 다르다"고 선을 그으면서 어그러졌다. 딴지일보 게시판을 중심으로 강성 당원들이 반발하자, 정 대표가 당원을 설득하기보다 김 원내대표에게 재협상을 지시한 것이다.

겉으로는 잠잠… 속으로는 '부글부글'
민주당은 겉으로는 잠잠하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이견을 제시하면 바로 수박으로 몰리는 분위기에서 누가 다른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며 당 분위기를 전했다. 이 대통령의 '30년 동지'이자 '7인회' 멤버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검찰개혁 각론에 대한 이견으로 '수박'으로 몰리는 판국에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수면 아래선 부글부글하고 있다. 한 의원은 "지금은 대통령이 스피커가 되도록 정무적으로 고민을 해줘야 하는데 정 대표는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정 대표의 행보에 대해선 "단기적으로 보면 특정 고관여층에게 어필할 수 있다"면서도 "(고관여층에선) 정 대표보다 이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훨씬 크고 성공한 정부가 되길 바라는 분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조희대 청문회'가 전략적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전망도 분분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 등을 들어 "조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이나, 청문회 개최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이 적지 않다. 한 초선 의원은 "조희대 몸값만 올려주는 '윤석열 시즌2'가 될 수 있다"며 "걱정하는 의원들이 정말 많다"고 했다. 다른 재선 의원도 "도대체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청문회를 추진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 중진 의원은 "당내 문제는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며 "정 대표, 추 법사위원장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과 비교하는 인사들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재명 당시 대표는 당원들이 원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자세로 당원들을 설득했다"며 "반면 정 대표는 당원들에게 사실상 '자동문'으로 여겨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의원·권리당원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하자는 강성 당원 요구를 이 대통령이 "단번에 넘기 어려운 벽이라며 단계적 변경을 설득한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지지율 하락, 해법이 안 보인다
지지율 하락 걱정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전당대회 기간 민주당 지지율(이하 한국갤럽 기준)은 한때 46%(7월3주)까지 올랐지만, 이번주(9월4주)엔 38%까지 하락했다. 한 지도부 의원은 "당이 이제라도 각성했으면 좋겠다"며 "개혁도 좋지만 국민이 박수 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이 대통령에게 도움은 못될 망정, 이재명 정부 지지율까지 깎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희대 청문회 논란 등으로 이번주 이 대통령의 직무수행 관련 긍정 평가는 취임 이후 최저치인 55%를 기록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통상 외국 순방 성과를 앞세워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이다.
당내에선 강성 일변도의 민주당 스탠스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김병주 최고위원이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사실상 출마 선언을 한 직후 '조희대 청문회'를 강행했다"며 "앞으로 경선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잡기 위해 강성 지지층에 구애하려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 위원장과 김 최고위원은 모두 경기지사 직을 노리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강경파 의원들 간 선명성 경쟁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한 중진 의원은 "강성 카드로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할 수 없지만, 이를 제어할 마땅한 방법도 없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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