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성게 그라탱·풀향 나는 돼지 내장… 왜 이런 음식을 먹나요?
김태윤 외, '로컬 오딧세이'

서울 종로구 수송동계곡의 ‘플래닛랩(planEAT lab)’은 이름처럼 먹거리를 기획·연구하는 곳이다. 밖에서 보면 영락없이 빈 업장 같지만, 전국에서 수집한 여러 식재료를 실험하고 ‘연구결과’를 요리로 선보이는 비정기 행사로 수익을 낸다. 사학을 전공한 요리사, 먹거리 다큐멘터리 대본을 쓴 작가가 의기투합한 이곳의 대표 행사는 특정 지역의 식재료를 지속 가능성의 관점에서 여섯 가지 코스 요리로 풀어낸 ‘로컬 오딧세이’.
신간은 이 행사 중 기장, 속초, 태안, 제주, 울릉도, 거문도 등 바다와 연안 지역의 식재료를 요리로 풀어낸 과정을 담았다. 책으로 엮으며 음식문헌 전문 번역가가 각 재료의 역사도 덧붙였다. 저자들은 말한다. 음식의 다양성은 “지역의 고유한 음식 문화가 유지되고, 제철 식재료가 살아 있고, 용도에 따라 다양한 품종을 선택할 수 있고, 세대 간에 이어지는 조리법과 기억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저자의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부산 기장이다. “사적인 각별함 때문”에 평소보다 더 잘 치르고 싶은 행사에 내놓은 음식은 말똥성게 그라탱. 대표적 탄소흡수원인 해조류를 무차별로 갉아먹어 바다 사막화를 일으키는 성게는 인간이 죄책감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드문 식재료다. 저자는 제철 맞은 성게 생식소를 우유와 함께 갈아 퓌레로 만들고 크루통을 곁들였다.
대형 그물이 아닌 자망(물고기 떼가 지나는 길목에 그물을 쳐놓고 그물코에 물고기가 스스로 걸리도록 유도하는 수동적 어획방식)으로 잡은 멸치로 만든 스페인식 초절임, 풍선말미잘로 만든 대만식 전병, 곰장어를 넣은 스프링롤, 다시마 넣은 꽈배기도 식탁에 올랐다.

속초는 저자가 “인생 통틀어 가장 우울했던 날” 떠난 여행지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친구와 찾은 겨울 해변에서 맛본 골뱅이무침은 “음식이 주는 위안이 무엇인지, 제철의 산지 재료를 챙겨 먹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저자는 이 골뱅이를 솜땀과 같은 태국풍 무침요리로 풀어낸다. 속초 사람들의 배를 채워준 못생긴 생선 감자떡은 살이 흐물거려 “여태 손질해본 생선 중 최악”의 난도를 자랑했지만, 행사에서 구이로 내놓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힙한 독사진”으로 재조명받는다.
태안에서 찾은 식재료는 갯벌이나 해안처럼 염도가 높은 지역에서 살아남은 염생식물이다. 조선시대 끔찍한 가뭄에 구황작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존재 자체가 생태계가 건강한지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된단다. 저자는 행사에서 염생식물 방석나물을 페루 전통 음식 '레체 데 티그레'로 풀어낸 요리에 곁들여 낸다. 이곳에서 찾은 또 다른 식재료는 아말피 레몬이다. 지구온난화로 과일 산지가 북상하고, 이런저런 교배종과 외래 작물의 국내 재배가 흔해졌는데 태안의 한 농가가 10년 넘게 아말피 레몬을 키우고 있다. 저자는 “기후 위기에 경각심을 갖되, 새로 도입한 식재료를 우리 식탁의 구성원으로 품을 시간이 왔다”며 이 레몬을 공수해 케이크로 내놓는다.

울릉도에서 발견한 식재료는 재래종 돼지다. 자연 방목으로 키운 돼지는 섬바디라는 풀을 먹고 자라 “삶은 내장에서 신기하게 풀 향이 났다”. 저자는 20년 전, 제대로 된 식당들이 문을 닫는 한겨울에 그리스 관광지를 찾는 바람에 일주일 내내 꼬치구이 수블라키만 먹으며 지냈는데 이때 기억을 떠올리며 재래종 돼지를 수블라키로 선보인다.
각각의 식재료를 찾는 여정과 옛 조리방식, 행사를 위해 고안한 새 요리법을 엮은 책은 잘 만든 다큐멘터리 여섯 편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추천사에 쓰인 것처럼 “요리책으로 봐도 되고, 로컬 공부책으로 써도 되는” 이 독특한 책은 소개하는 식재료별로 각각의 이야기가 펼쳐져 어떤 부분부터 시작해도 좋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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