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후 탈모약 먹었다가 출전 정지… 인정사정없는 ‘도핑 검사’

김동현 기자 2025. 9. 27.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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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의적 도핑에도 처벌 엄격

스페인 프로축구 아틀레틱 빌바오의 수비수 예라이 알바레스(30)는 최근 UEFA(유럽축구연맹)로부터 10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지난 5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치른 UEFA 유로파리그 4강 1차전 직후 실시한 도핑 테스트에서 ‘칸레논(Canrenone)’이란 금지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알바레스는 2016년 고환암 진단을 받고 2년간 힘겨운 투병 끝에 복귀해 ‘기적의 드라마’를 쓴 주인공이다. 암 투병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빠진 그는 탈모 치료제를 처방받아 복용했는데, 탈모약에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금지 성분으로 지정한 칸레논이 포함된 것이다. 칸레논은 신체 내 다른 성분의 검출을 방해하는 ‘은폐제’로 쓰일 수 있다.

◇암 투병 후 탈모약 먹다가 ‘출전 정지’

WADA는 신체 능력을 단기간에 향상시키는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 복용을 ‘불법 도핑’으로 엄격히 금지한다. 모든 선수가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스포츠의 근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약물이 선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해 경우에 따라선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WADA가 금지한 물질 목록은 각성제, 이뇨제, 호르몬 조절제 등 수백 가지에 이른다.

반(反)도핑 당국은 ‘프로 선수는 자신이 복용한 약물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많은 선수가 부주의로 도핑 테스트에 적발되지만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제하면 징계의 일관성이 흔들리고,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 도핑을 방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핑 당국은 비고의적 도핑을 ‘오염(Contamination)’이라고 부르며,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선수에겐 제재위원회에 출석해 입장을 소명할 기회를 부여한다. 비고의성을 입증할 경우 징계 수위가 감경되기도 하나 ‘완전 구제’를 받는 경우는 없다.

◇국내도 감기약·통풍약 때문에 적발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적발된 도핑 사례 20건 중 75%인 15건이 부주의에 의한 ‘오염’ 사례였다. KPGA(한국프로골프) 투어 통산 6승의 허인회는 올해 초 통풍 치료 목적으로 처방받은 약에서 금지 성분 ‘트리마돌’이 검출돼 6개월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작년 5월 ‘도핑 청정 구역’이라고 여겨진 바둑에선 한 전국 대회 금메달리스트 출신 선수가 흥분제에 해당하는 금지 성분 ‘메틸에페드린염산염’이 들어간 감기약을 복용했다가 1년 6개월 자격 정지를 당했다.

엄격한 관리를 받는 세계적인 선수들도 도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자 육상 단거리 강자였던 에리욘 나이튼(미국)은 작년 5월 ‘트렌볼론’이란 스테로이드 성분 검출로 4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트렌볼론은 축산업에서 가축의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사용되는데, 나이튼은 이 약물을 주사한 소의 고기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윔블던 테니스 여자 단식 챔피언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는 지난해 8월 시차 적응을 위해 금지 약물이 포함된 수면제를 모르고 섭취했다가 1개월 출장 정지를 당했다.

KADA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도핑 검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극미량의 금지 약물도 검출이 가능해지자 ‘오염’으로 인한 적발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DNA 합성 등 진화하는 금지 약물

도핑 수법은 날로 고도화되고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약물 투여뿐만 아니라 혈액이나 산소를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것도 도핑으로 간주될 수 있다. 불과 16세에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는 지난해 메달을 박탈당했다. 조사 결과 러시아 팀 주치의가 2년간 발리예바에게 심장약과 근육 강화제 등 56종에 달하는 물질을 칵테일처럼 섞어서 투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인공적으로 합성한 DNA를 몸에 삽입, 혈액 내 산소 운반 능력을 높이는 호르몬인 EPO를 과다 생성하도록 하는 ‘유전자 도핑’도 있다. 일부 선수들은 도핑 검사를 피하려고 특수 제작된 스테로이드를 아주 조금씩 지속적으로 피부에 바르거나 피부 아래에 주입하는 방식까지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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