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유럽 나들이’ 대만 옥배추에 온 협박 메일
“행사 계속하면 테러하겠다”
일각선 “친중국 세력 의심”

지난 24일 대만 외교부와 문화부, 중국 담당 기구 대륙위원회에 발신인 불명 메일이 도착했다. 지난 11일 체코 프라하 국립박물관에서 개막해 올 연말까지 계속되는 특별 전시회 ‘고궁박물원 문화재 100선과 그 이야기’를 겨냥해 “이 전시를 계속할 경우 화재·절도·총격 테러가 발생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내용이었다. 메일이 언급한 전시는 대만의 국립 중앙 박물관 격인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 유물 131점을 체코에 소개하는 행사다.
올해 고궁박물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진행되는 기념행사로 공식 외교 관계가 없는 유럽 국가와 교류라는 점 때문에 대만 정부가 공들여 준비해왔다. 협박 메일이 발송된 뒤 대만 정부는 “우리는 폭력적인 협박과 비이성적인 행위를 강력히 비난한다”는 성명을 내고 체코 당국과 함께 보안 강화 조치 논의에 나섰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임을 강조하며 대만의 독자 외교 활동을 저지해온 만큼 친중국 세력이 이번 사건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만 고궁박물원이 외국 박물관과 교류 전시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이번 전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아 왔다. 양안 정세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고궁박물원의 최고 인기 전시품 ‘취옥백채(翠玉白菜)’가 처음으로 유럽에서 전시되기 때문이다. 취옥백채는 옥(玉)을 이용해 여치가 앉아 있는 배추를 본떠 만든 조각으로 ‘옥배추’라는 애칭으로 친숙하다. 청나라 11대 황제 광서제가 후궁 근비와 결혼할 때 예물로 준 보물로 추정된다. 중국 전통 고기 요리인 동파육을 본떠 조각한 육형석(肉形石)과 함께 고궁박물원을 대표하는 ‘대만의 모나리자’로도 불린다. 고궁박물원을 찾는 한국 관람객들 사이에서도 ‘필수 관람 전시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친중국 세력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대만이 국립 고궁박물원을 중국의 고립 작전에 맞서 정체성을 지키고 정통성을 알리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은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의 시작을 1925년 베이징에서 개관한 고궁박물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수립된 중화민국의 정통성이 대만 이주 뒤에도 이어지고 있는 만큼 올해가 개관 100주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을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으로 규정하고 있는 중국은 베이징 고궁박물원에만 정통성이 있으며, 타이베이의 박물원 소장품은 훔쳐간 ‘장물’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두 고궁박물원’이 늘 단절했던 것은 아니다. 친중 성향 국민당 마잉주 총통 집권기이던 2015년에는 타이베이와 베이징의 고궁박물원이 90주년을 맞아 일부 행사를 함께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대만에서 반중 성향 민주진보당 차이잉원·라이칭더 총통이 연속 집권하면서 고궁박물원을 둘러싼 신경전은 가열되고 있다. 지난 5월 샤오충황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고궁박물원과의 협업 가능성에 대해 “전투기·전함이 대만 해협을 오가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우호나 협력의 기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중국 관영지 글로벌타임스는 “민진당의 궁극적 목표는 대만이 본토의 문화적 뿌리와 연결된 관계를 끊는 것이고, 이러한 문화의 노골적인 정치화는 중국 민족과 선조들에 대한 배신이다”라며 비난했다.
고궁박물원 100주년 기념 전시가 체코에서 이뤄진 것도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체코는 중국과 공식 외교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대만과 폭넓게 교류하고 있다. 11일 저녁 열린 개막 행사에는 린자룽 외교부장(외무장관 격), 리위안 문화부장(문화체육관광부장관 격), 장지천 입법원 부원장(국회부의장 격) 등 대만 최고위 인사 세 명이 참석했고, 체코 측에서도 상·하원 의장, 문화부·환경부 차관, 국립중앙박물관장 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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