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넘어 희망과 공동체의 회복으로

루시 이스트호프 지음
박다솜 옮김
창비
2001년 9·11 테러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에서 2753명 등 모두 2977명이 사망한 참혹한 재난이었다. 테러범들이 납치한 비행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와 충돌한 후 102분 만에 빌딩이 무너지면서 법의학적 대응은 차원이 다르게 복잡해졌다. 사망자 신원 확인을 위해 재난 법의학 인력이 사상 최대 규모로 투입됐다. 많은 사망자가 아주 작은 시신 조각으로만 돌아왔고 아예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이럴 때 가장 힘들게 그리고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재난 복구 전문가들이다.
![9·11 테러 당일 근무했던 소방관이 지난 11일 24주년 기념식에서 희생자들 이름이 둘레에 새겨진 연못을 바라보는 모습. [AP=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7/joongangsunday/20250927003741066cnke.jpg)
9·11 테러를 비롯해 대규모 재난은 예측이 어렵고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는 만큼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재난의 규모가 엄청나서 그 누구도 잘 수습하기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9·11 당시 지은이는 ‘케니언 인터내셔널 응급 서비스’에 몸담고 있었다. 이 회사는 뉴욕시 최고 검시사무소에 고용돼 현장 관리, 개인 유류품 보관과 시신 안치소 운영을 보조했다. 지은이에게는 9·11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와 유류품·유해를 보관하는 시설에 파견할 영국 안치소·장례 인력을 모집하는 일이 즉각적으로 맡겨졌다.
뉴욕 검시관은 팀원들에게 시신을 받을 준비를 시켰으나 현장 발굴이 난항을 겪는 바람에 막상 수습된 시신은 거의 없었다. 수습된 유해 조각은 총 2만2000개였다. 재난복구팀의 뼈를 깎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명단에 오른 사람의 40%는 여전히 그들의 죽음을 물리적으로 입증해 줄 유해가 나오지 않았다. 테러 발생 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원 확인 작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떤 가족에게는 이런 상황이 위안이 됐고, 어떤 가족에겐 정반대였다.
2004년 12월 26일엔 인도양 지진해일로 인도네시아·스리랑카·인도·태국 등에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지은이는 케니언을 떠나 영국 케임브리지 시의회에서 연구 및 위기 관리 담당으로 일했다. 지진해일 발생 후 가장 먼저 영국의 젊은 공무원으로부터 시신 보관용 가방을 어떻게 구하는지를 묻는 전화가 왔다. 치아나 유류품 등 신원을 알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러모아 사망자의 이름을 찾아 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지은이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재난 복구 전문가들의 일은 현장의 잔해를 치우고 시신의 신원을 확인해 유가족에게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를 넘어 물질적으로, 심리적으로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또다시 닥칠 새로운 형태의 재난에 대비해 시스템을 개선하고 적응훈련을 한다. 슬픔을 단지 슬픔으로만 내버려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극복하는 체제를 만든다.
한국사회 또한 여러 가지 재난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세월호 침몰, 이태원 참사 등 최근에만 해도 너무나도 뼈아프고 안타까운 재난을 많이 겪었지만 제대로 재난을 복구하지 못했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수습에 전념키는커녕 정치적인 이슈로 비화시켜 아귀다툼을 벌이는 슬픈 기억도 많다. 재난은 피할 수 없겠지만 재난 극복은 미리 대비하고 합심해서 해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좋은 재난복구용 참고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은 자들의 삶은 고통의 지옥일 수 있다. 혹독한 시간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한 잔의 음료와 위로의 미소를 건네는 일은 큰 힘이 될 것이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삶의 희망이 더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회복력을 키워 절망을 희망의 스위치로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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