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수용 불가’ 하루 만에…트럼프 “3500억달러 선불” 못박아

한미 간 무역 합의의 핵심 쟁점인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둘러싸고 이견이 계속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각)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는 선불’이라고 말했다. 관세를 낮추려면 해당 금액을 일시불로 납부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전날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상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자마자 ‘금액’과 ‘방식’을 못박은 것이다.
트럼프 머릿속엔 ‘선 입금-후 인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기자들과 문답 과정에서 자신의 관세 정책 덕분에 미국이 유럽연합(EU)·일본·한국으로부터 받게 될 금액을 자랑했다. 그는 “9500억 달러를 받는 사례도 있다. 일본으로부터는 5500억 달러, 한국으로부터는 3500억 달러를 받는다”며 “그것은 선불(up front)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천천히 지급되는 돈이 아니라, 확정적으로 미리 내놓는 돈이라는 뜻이다. 투자 대상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시금으로 거액을 넘기라는 ‘백지수표’ 요구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일본과 합의 직후에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일본과 합의 직후인 지난 7월 24일 ‘다른 나라도 돈을 내면 관세를 낮출 수 있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 난 다른 나라도 돈을 내고 관세를 낮추는 것(buy it down)을 허용하겠다”며 “일본이 5500억달러를 가져왔고, 그중 90%는 미국이 챙기는 구조이며, 이는 마치 ‘사이닝 보너스’를 받은 것과 같다. (나중에 돌려줘야 할) 대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이 ‘관세 인하’라는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에 선제적으로 거액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선불’ 발언과 합쳐보면 트럼프 대통령 머릿속에는 ‘선 입금-후 관세인하’라는 도식이 자리잡고 있는 거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수용 불가’ 하루 뒤 나온 메시지
이날 ‘선불’ 발언이 이재명 대통령의 ‘수용 불가’ 메시지 뒤 하루 만에 나왔다는 점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유엔(UN)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나 일본의 투자 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는 협상을 체결할 수 없다는 뜻을 강조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 대통령이 (협상 내용이)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사항을 누차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만남이 3500억달러 투자 패키지 협상의 중대한 분수령”이라고도 했다. 현재 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상의 ‘최후 통첩’을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틱톡 관련 물음에 답하다가 돌연 무역 성과·관세 수입·투자 약속을 꺼내 들었다. ‘내가 이만큼의 현금을 당겨왔다’는 식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특유의 과장 화법의 일환으로 ‘선불’이라는 표현을 덧붙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베선트 장관이 이 대통령과 만난 뒤 “내부에서도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한 뒤 나온 첫 미국 쪽 메시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협상 막바지, 러트닉 ‘3500억 달러+α’ 요구설
무역 합의 핵심 쟁점인 3500억 달러 규모와 관련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 쪽에 증액을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한국 정부 쪽 고문 등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러트닉 장관이 최근 한국 고위 관계자들과 ‘3500억 달러를 소폭 증액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며 “러트닉 장관은 최종 합의 금액을 일본이 약속한 5500억 달러에 좀 더 가까워지는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패키지 구성과 관련해서도 ‘더 많은 현금’을 압박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러트닉 장관이 더 많은 부분을 대출이 아닌 현금으로 제공하길 원한다는 입장을 한국 쪽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했다”며 “러트닉 장관은 한국이 일본의 5500억 달러 수준에 근접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체결한 조건 중 많은 부분에 한국이 동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특히 한국에 일본과 다른 구조를 허용할 경우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일본과의 협정까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최종 합의에 가까워오고 있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은 이날 한겨레에 “최종 금액 인상에 대해 양국이 ‘논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 대통령이 직접 움직였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APEC) 정상회의가 다가오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충격파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협상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종 금액은 다소 높이되, ‘현금+대출’로 구성하고,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는 등 여러가지 조합을 놓고 양국이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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