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선불" "일본처럼" 조바심 난 미국, 한국에 강한 압박

권경성 2025. 9. 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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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韓日 묶어 ‘미리 내는 돈’ 규정
‘관세 인하 전제’ 환기… 美 상무 조바심
WSJ “러트닉, ‘투자금 더 늘려라’ 요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미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 미국 사업권 매각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금 3,500억 달러(약 490조 원)를 관세를 낮추려 미리 치르는 돈으로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용처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5,500억 달러(약 775조 원)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고서야 주력 대미 수출 품목 자동차의 관세 인하를 얻어 낸 일본과 묶어서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도 일본과 최대한 비슷한 투자 조건을 받아들이라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다시피 그것은 선불”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 미국 사업권 매각 관련 행정명령 서명식이 열린 백악관 집무실에서 취재진에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 협상 성과를 자랑하다가 “알다시피 우리는 일본에서 5,500억 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 달러를 각각 받는다”며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7월 말 한미 간에 구두로 합의된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를 어떤 방식으로 이행할지를 놓고 양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협정 문서 서명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이에 한국의 투자금 3,500억 달러가 관세 인하의 전제임을 다시 환기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 아니었겠느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6일(한국시간) "'선불'이란 표현이 매우 모호하지만, '대미투자를 빨리 해 달라'는, 합의를 서두르자는 원론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골대 움직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의 협상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모델은 일본으로 짐작된다. 이달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뒤 공개한 미일 간 양해각서를 보면 일본 자금을 어느 곳에 투자할지 결정하는 권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처를 지정하면 일본은 단 45일 이내에 자금을 대야 하며, 일본이 투자 원금을 회수한 뒤에는 미국이 이익의 90%를 챙긴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달 25일 미 워싱턴 윌러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러트닉 장관이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현금 투자 비율을 높이고 일본에 더 가깝게 투자액을 늘리는 한편, 일본이 서명한 대미 투자 합의와 유사한 조건들을 수용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대미 투자의 금액보다 구조 및 조건이 일본과 유사해야 한다는 점을 러트닉 장관이 한국 측에 분명히 했다고 WSJ는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일본 모델을 따르지 않을 경우 역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미일 협정(양해각서)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압박하는 미국도 조바심을 느끼고 있을 공산이 크다. 구두 합의를 문서화하지 않은 다른 나라들이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 간 무역 협상이 어떤 식으로 귀결되는지를 주시하고 있으며, 한국과의 합의가 원하는 대로 도출된다면 남은 협상을 타결하기 위한 동력(모멘텀)이 트럼프 행정부에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WSJ는 짚었다. 문제는 한국이 순순히 굽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WSJ에 따르면 일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비공개 자리에서 백악관이 ‘골대를 움직이고 있다’며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본보에 “일본을 잡으면 한국이 따라오리라고 믿었던 한일 협상 담당 러트닉에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방미 중에 러트닉 장관과 접촉한 적 없다"면서 "미국 정부가 3,500억 달러 이상의 추가 투자를 협상단에 공식 요청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통화 스와프 없인 불가능

앞서 한미는 7월 30일 타결한 무역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세부 조율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분 투자를 최소화하고 대부분 대출과 보증으로 한다는 게 한국 입장인 반면 미국은 한국이 지분 투자 방식으로 달러 현금을 주기를 바란다.

한국 정부는 3,500억 달러 규모 투자금을 미국 측 요구 방식대로 제공할 경우 한국이 상당한 외환 리스크를 지게 되는 만큼 한미 간 통화 스와프(두 나라가 서로의 통화를 일정 기간 미리 정한 환율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한 계약) 체결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원화가 필요하지 않은 미국이 소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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