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사고’로 아내 잃은 남편에게 치사 혐의…대체 왜? [뉴스AS]

“땅꺼짐까지 경우의 수로 생각하면서 운전해야 한다는 말인가?” “유족을 두 번 죽이는 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도로 한복판에 발생한 땅꺼짐(싱크홀) 사고로 아내를 잃은 80대 운전자 ㄱ씨가 치사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상식에 반하는 판단’이라는 누리꾼 반응이 줄을 이었다. 예기치 않은 싱크홀 사고로 가족을 잃은 고령 운전자가 그 죽음의 가해자로 인정된 비극에 대한 공감, 언젠가 내 일이 될지 모른다는 운전자들의 불안이었다. 기소유예는 범행 동기와 정황 등을 고려해 검찰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는 않지만, 혐의는 인정된다는 결정이다.
검찰과 경찰, 한국도로교통공단의 설명을 26일 종합하면, ㄱ씨의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 수사 과정에서의 핵심은 ‘회피 가능성’이었다. ㄱ씨가 운전 중 전방 주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면 땅꺼짐을 피해 아내를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 따졌다는 것이다.
연희동 성산로(연세대 앞에서 성산대교로 가는 방면)에서 땅꺼짐이 발생한 시각은 지난해 8월29일 11시26분께다. 3분15초 뒤인 11시30분께, ㄱ씨가 운전하던 티볼리 차량이 완전히 왼쪽으로 기울며 구멍 안으로 추락했다. 땅꺼짐의 규모는 가로 6m, 세로 4m에 깊이는 2.5m였다. 사고로 조수석에 타고 있던 70대 아내가 사망했고, ㄱ씨 역시 중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의 회피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분석을 의뢰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한겨레에 “사고 직전 차량의 속도, 운전자가 위험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던 지점까지의 정지거리 등을 산출해 회피 가능성을 판단한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도 현장 조사로 시야 분석을 했고, 그 결과를 경찰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도로교통공단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ㄱ씨가 땅꺼짐으로부터 11m 떨어진 시점에 위험을 인지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싱크홀 발생 뒤 3분 정도 거리에 차량이 빽빽이 들어차 서행 중이었다”며 “사고가 나기 전까지 다른 차량들은 싱크홀을 발견해 피해가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결국 11m의 거리를 앞두고 ㄱ씨가 “싱크홀을 피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서부지검도 ㄱ씨의 과실 자체는 인정된다고 봤다. 교통사고 전문 김현정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비)는 “다른 차량이 싱크홀을 피해갔다면 엄격한 의미에서 주의 의무 위반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울 수는 있다”며 “하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형사처벌은 되지 않는 기소유예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ㄱ씨에 대한 혐의 인정이 시민 감정에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은 수사기관도 인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무혐의였으면 좋았겠다는 국민 마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고령이나 피해야 할 대상이 싱크홀이라는 점을 고려해 반사제동 거리를 예외적으로 넓게 적용해 혐의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며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는 검찰에 송치할 당시 충분히 의견을 썼다”고 했다. 서부지검 관계자도 “사고 발생 경위나 피해자와의 관계를 고려해 기소유예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진 데는 정작 사고의 발단이 된 땅꺼짐 발생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영향도 크다. 경찰은 연희동 땅꺼짐 발생에 대해 내사만 벌인 뒤 수사 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땅꺼짐이 “지형적 특성, 기상 영향, 지하매설물, 주변 공사장의 영향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했다고 봤는데, 이런 요인에 법적 책임을 물을 구체적 대상이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싱크홀이 발생한 근본 원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채 아내를 잃은 운전자의 책임을 묻는 모양새가 되니 공분을 사는 것”이라며 “싱크홀이 발생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수사가 미흡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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