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망자 96%가 사전에 신호, 관심 가져주세요"

박종호 2025. 9. 26. 09: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만 4439명이었다. 하루 평균 40명, 36분마다 한 명씩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은 200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압도적으로 높은 자살률 1위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와 우리 사회가 다양한 노력을 펼쳤지만, 2011년 이후 13년 만인 지난해 가장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자해 사건 이 급증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지난달 “자살 문제가 정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며 “자살은 사회적 재난이란 관점에서 정책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었던 지난 10일 동아대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 사례관리자로 일하는 성혜진 씨를 만나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동아대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 사례관리자로 일하는 성혜진 씨가 ‘실패 적금 통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성 씨는 병원 응급실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자살, 자살, 자해, 자살, 자해…. 24시간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살과 자해 사건 발생 문자가 온다. 사례관리자는 환자가 추락이나 약물 중독을 비롯한 어떤 사유로 왔는지, 과거력은 없는지 먼저 파악하고 응급실로 달려가 기본적인 소생 조치를 마친 환자를 안정시키며 관리하게 된다.

이 같은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은 2021년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공모를 통해 사업에 참여할 병원을 선정하고 인건비와 사업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부산 지역에서는 동아대병원, 부산대병원, 인제대 부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 등 총 4곳이 참여했다. 이들 병원은 응급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사례관리팀으로 구성된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자살 시도자 가운데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사망으로 이어지는 환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도움을 받아 자살 재시도를 막는 체계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부산 지역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는 10여 명이 사례관리자로 활동하고 있다.

성 씨가 2022년 9월부터 동아대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 일하며 지금까지 만난 자살 시도자는 400명 가까이나 된다. 자살 시도가 처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살 시도자 중에 이 사람은 자살을 재차 시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불길한 예감은 병원에서 나간 며칠 뒤에 다시 응급실로 실려 오는 현실이 되어 나타나곤 했다.

지금까지 만난 자해 환자 중에는 아홉 살이 가장 어린 나이였다. 아이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사주지 않는다고 치약 한 통을 다 먹어버린 것이다(어린이의 경우 즉시 독극물 상담센터에 연락하거나, 119로 응급 이송해야 한다). 대체 어린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그 같은 행동을 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놀랍게도 전문가들은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픈 걸 보여주고 싶다’ 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까지 할 것이다’라는 심리라고 분석한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게임기를 사주면 더 이상 자해하지 않을지 물었다. 성 씨는 “아이는 보상 심리로 인해 계속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알려 줬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에게 게임기를 사줬고, 아이는 다음 해에 다시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이번에는 핸드폰을 갖고 싶었단다.

대체 이런 경우를 맞닥뜨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곤혹스럽다. 해결책은 부모 손에 달려 있다. 부모가 먼저 달라져야 아이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 씨는 부모가 교육을 받도록 건강가정지원센터로 연계하는 편이다. 하지만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10명 중 3명도 따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선생님이 의사는 아니잖아요?” 부모가 이렇게 나와 사례관리자 입장에서 할 말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성 씨는 “이런 경우를 많이 봐 왔는데,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지 않느냐. 어머니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교육을 받도록 권고를 드리는 것이다”라고 재차 설득한다. 그렇게 아무리 애써도 부모가 무신경하게 나오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자해를 반복하는 아이 부모가 “알아서 해 주세요. 아이한테 신용카드 보냈어요”라고 하는 씁쓸한 사례도 있었다.

어른들의 머리로는 자해를 일삼는 요즘 아이들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자해를 하면 어쨌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이지만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조금이라도, 어떻게 해결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10대 청소년의 자해는 또래의 과시용 문화라는 해석도 있다. 일부에서는 자해 흔적이 없으면 마마보이 취급을 하고, 같이 못 놀겠다고 따돌리기도 한다. 자해가 아이들 사이에서 어울리기 위해 ‘나도 사실은 힘들다’는 표시라니 갑갑해진다.

자해 예방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무턱대고 막으면 더 큰 자해나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성 씨는 “자살이나 자해 시도는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이 이해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그런 시도를 했다면 ‘그만큼 힘들고 아파서 그렇게 했구나.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라고 말한다. 자살이나 자해는 살고 싶다는 소리일 수 있다니….

자살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남편이랑 싸워서 약 좀 먹었을 뿐인데 자살 시도라고 말하지 말라는 식이 그렇다. 그럴 때는 부정적인 어감의 자살보다 사고라고 표현하는 게 낫다. 사례관리자는 맨날 ‘죽고 싶다, 힘들다, 살아갈 이유를 찾아달라’라고 하는 사람들만 만나니 자칫 스스로가 소진되는 느낌이 드는 순간도 찾아온다.

상담환자가 그린 그림.

힘든 일을 견디게 만드는 원동력 또한 사람이다. 성 씨는 이 일을 보람있게 만들어 준 분의 사례를 본인 동의 하에 소개했다. 자해를 많이 해서 살이 보풀처럼 일어난 젊은 여성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재수생이었다. 계속 수능을 보고 있지만, 가고 싶은 과가 없어서 대학에는 한 번도 지원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해하면서도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중에 자살할 거라고 말했지만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 희망이 보였다.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면서 가장 익숙한 자해를 하는 것 같았다.

성 씨는 그가 병원에 올 때마다 같이 산책을 나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힘들었던 경험도 공유했다. 집에서는 누워서 게임만 하고, 유일한 외출이 병원 상담인 그에게 밖에 있는 시간을 늘려 보라고 설득했다.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 달에 세 번 이상 오다 일 년이 지나면서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었다. 그는 올해 간호학과에 들어갔다. 그 뒤 “선생님, 병원에서 같이 일하고 싶어요. 오래 일해 주세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성 씨도 “스스로 버티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련을 이겨내고 잘 성장했어요. 자신에게 칭찬을 많이 해 주세요. 우리가 같이 일할 수 있도록 기원하면서, 계속 이 자리에 있을게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자살은 예고 없는 비극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함께 2015~2023년 '심리부검' 면담을 진행한 결과, 자살 사망자의 96.6%가 사망 전 경고 신호를 보였지만, 주변에서 알아차린 경우는 23.8%에 불과했다. 사망 1년 이상 전부터는 수면 상태 변화(26.2%), 자살 언급(24.1%) 등이 주요 신호였다. 특히 사망 1개월 이내에는 감정 상태 변화(19.1%), 주변 정리(14.0%) 등이 나타났다.

성 씨는 “자살 신호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조금 힘들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굉장히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평소하고 다르게 느껴지는 분위기나 말투, 표정이 분명히 캐치되는 날이 있다. 그 느낌을 무시하지 않고, ‘평소하고 다르지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성혜진 사례관리자가 환자와 상담하고 있다.

자살은 본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유족들은 가까운 사람의 자살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살자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자살 유족들은 고인의 죽음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해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자살 유족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살 유족 자조 모임에 참가해 고통스러운 감정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희망을 공유하는 방법도 권장된다. ‘자살 유족 권리 장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자살로 인한 죽음에 대하여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권리, 희망을 느낄 권리, 평화와 존엄성을 유지할 권리, 새로운 시작을 할 권리가 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