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찬욱 감독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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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복수 3부작'과 '헤어질 결심'으로 전 세계 영화팬을 사로잡은 거장 박찬욱 감독이 3년 만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왔다.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가 갑작스럽게 해고된 후 재취업을 위해 벌이는 처절한 분투를 그린 블랙코미디다. 2026년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부문 한국 대표작으로도 선정됐다.

박찬욱 감독은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21년 만에 이병헌과 재회한 소회에 대해서 "JSA 출연진들이 모인 뒤풀이에서 언제 이렇게 늙었나 싶으면서도 잘 버티고 살아남아 있다는 게 대견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원작 소설 '액스'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각본을 직접 쓰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며 "히치콕이나 존 포드, 오즈 야스지로 등 영화 역사 '신급' 감독들도 다 남의 각본으로 만들었다"며 원작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영화 기운 되살리는 정도면...오스카는 양면의 감정'
개봉일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경력 초기에는 개봉 날 비 오면 걱정들 많이 했어요. 손님 안 온다고. 또 누군가는 손님이 똑같이 100명이 와도 우산 쓰고 줄 서니까 더 길어 보인다는 말도 있었죠, 옛날 얘기고요. 요즘에는 이 정도 비가 오니까 기분이 서늘하고 좋은 것 같아요.

이번 영화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한국 영화관에 손님들이 돌아오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면 좋겠고,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만족해서 돌아가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음 한국 영화를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고, 심지어는 한국 영화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경험이 '해볼 만했지, 잊고 있었던 이 감각이 다시 살아나네'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IMAX로 두 번 보셨다고 하는데, 어떠셨나요.
두 번 봤어요. 처음에는 앞줄에서 봤고, 셀럽 시사 때는 뒤에서 봤는데, 좌우 끝이 시야 바깥으로 나가면서 영화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거든요.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IMAX 카메라로 찍은 것도 아니고, 라지 포맷 센서가 아닌 카메라로 찍었는데 IMAX로 볼 때 화질에 문제가 없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카메라들이 워낙 좋아져서 전혀 손색이 없더라고요.
2017년 이 작품을 미국 영어 영화로 제작하려다 투자가 무산됐고, 한국영화로 결국 완성해내셨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한국화하는 과정에서 주로 많이 고려했던 점은 부동산, 집에 대한 집착과 가부장적인 면이에요. 만수에 남성성,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태도도 들어가서 처절하고 불쌍하지만 또 우스꽝스럽기도 한 그런 면을 많이 강조했어요. 또 이건 한국과는 관계없고, 시대가 변하면서 AI라는 용어가 새로 우리 사회에 등장했잖아요. 여기서 결말 부분이 많이 바뀌게 됐어요. 그 정도가 주요 변화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이번엔 코미디가 전면에 나왔습니다.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 은근히 풍겨나오는 유머들이 좋아 보여서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만드는 과정에서는 노동자 시스템 속 노동자의 이야기다 보니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생각날 수밖에 없었고요. 굉장히 슬픈 이야기라고 해서 계속 우울한 기조로 묘사한다고 비극이 더 강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 웃길수록 반대로 연민이 더 커지고 인물에 대한 비극성이 더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병헌 배우와 21년 만의 재회는 어땠나요.
며칠 전 시사 끝나고 이영애는 먼저 가고 뒤풀이에서 송강호, 이병헌, 신하균 이렇게 JSA 식구들이 모였는데 너무 웃기기도 하고, 이 친구들이 언제 이렇게 늙었나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그래도 잘 버티고 살아남아 있구나, 관리를 잘했구나는 생각이 들어서 저를 포함해서 모두 다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손예진 배우와는 첫 작업인데, 어떠셨나요.
병헌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리' 역을 예진 씨에게 제안하게 됐어요. 만수는 물리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맞닥뜨리고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변화가 많은 인물인데, 미리는 거의 집에만 있고 대부분 가만히 보고 몇 마디 하거나 포옹하고 대화하는 정도예요. 그렇기 때문에 훨씬 어려운 인물을 맡은 거죠. 미묘한 표정의 변화, 어조 억양의 변화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거든요.
손예진 배우가 특별히 한 말이 있다던데요.
예진 씨가 '영화를 본 친구들이 '너 이걸 왜 했어?'라는 말만 안 듣게 해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한 마디가 두고두고 마음에 남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공을 가장 많이 들였습니다.
온실과 분재 설정은 어떻게 나왔나요.
류성희 미술 감독의 제안이었어요. '만수에게 이런 취미가 있다면 어떨까요'라고 했는데, 어차피 원예 취미가 있는 사람이니까. 분재 세계를 접할수록 독특한 매력이 있었어요. 식물을 자연 환경에 방치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나무를 가져다가 지극히 보살피면서 키우는 극단적인 돌봄의 작업인데, 한편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꾸미기 위해 가지를 잘라내서 굉장히 인위적인 모양을 만들고 있잖아요.

원작은 어떻게 찾으시나요.
어디서 올지 모르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어요. 좋은 영화화 소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골라서 읽죠. 최근에는 소설은 제프 다이어의 사진과 재즈에 관한 산문을 읽고 있어요. 또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다시 읽기도 하고, 여러 책을 보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걸 창작하고 싶다는 감독도 있지만, 감독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다 원작이 있으면 좋겠어요. 심지어 누가 각본도 써줬으면 좋겠고요. 정서경 작가나 이경미 감독이나 누가 써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영화를 더 자주 만들 수 있잖아요. 각본 쓰느라 보내는 시간이 1-2년인데 각본을 누가 주면 매년 영화 만들 수 있죠. 히치콕이나 존 포드나 오즈 야스지로 같은 영화 역사 신급 위대한 감독들도 다 남의 각본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되니까 내가 할 수 없이 각본 작업을 하고 있는 거고요.
이경미 감독과의 각본 작업은 어땠나요.
정서경 작가와의 작업 방식에서는 차이가 없고 늘 똑같아요. 차이가 있다면, 정서경 작가는 여성성이 더 두드러지는 터치가 강하고, 이경미 감독은 트위스트된 인물들을 잘 묘사하죠. 정서경 작가가 동화적인 면이 강하다면 이경미 감독은 작가는 현실적인 면이 강하고요.
첫 살인 장면이 굉장히 극적입니다.
영화의 중간 지점이거든요. 지루해질 수도 있는 타이밍이고, '도대체 언제 하는 거냐, 준비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 하는 불만도 생길 때죠. 세 사람을 죽인다는데 아직 한 명도 안 죽였으면 영화는 언제 끝나는 거냐라는 일종의 관객의 기다림이 나올 시기입니다. 그래서 첫 살인에서 기다린 만족감을 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음향의 역할이 중요해 보입니다.
영화를 만들수록 소리의 중요성을 더 알게 돼요. 관객은 소리를 의식적으로 잘 못 느끼지만 무의식적인 영향을 많이 줘요. 예를 들면 공장에서 만수가 멍한 상태일 때와 집 앞에서 멍하게 있을 때 잠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다가 뒤늦게 아내가 '여보' 하고 부르면 갑자기 매미 소리와 바람 소리가 확 들어오죠.
자신에 대한 선입견이 부담스럽다고 하셨는데.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이렇지'라는 고정관념이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도끼'나 '모가지'라는 제목을 쓰고 싶었지만 못 쓴 것도 그런 이유죠. 또 잔인하네, 또 선정적이네라는 생각이 있을까봐요. 선입견 없이 신인감독의 영화처럼 봐주면 어떨까 싶었는데, 저에 대한 고정관념은 잔인하고 노출, 성적인 묘사가 있다는 거잖아요. '뒤틀렸다', 특히나 '변태적'이라는 선입견도 부담되고요. 나이가 들수록 늙은 변태처럼 보일까봐 걱정돼요.
15세 관람가 등급은 의도했던 건가요.
딱히 목표에 둔 건 아니었어요. 각본을 쓰고 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가다가는 청소년관람불가가 나오겠는데 어쩌지?' 단계에 도달했을 때 굳이 피해가지 않는다는 거였죠. <헤어질 결심>이나 이 영화는 각본을 쓰다 보니 위험할 게 별로 없었어요. '이렇게 만들면 팬들이 실망하겠는데?' 하면서 더 넣거나 자극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죠.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역할에 유명 배우인 차승원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제가 제작하고 차승원이 주연한 <전란>에서 만나면서 섭외했어요. 관객이 '만수가 이 사람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을 줬으면 좋겠더라고요. 차승원 배우가 키도 크고 무표정으로 있으면 되게 무서워 보이거든요. 무명 배우라면 관객들이 쉽게 제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어서 유명 배우를 쓰고 싶었어요.

주인공 만수가 재취업이 안돼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있습니다. 감독님도 이런 시절이 있었나요.
JSA 전에는 너무나 어려운 시절을 겪었어요. 영화를 연출하기 위해서 영화사들을 찾아다니고 프로듀서들을 찾아가서 시나리오 보여드리고. 계약서도 쓰고 했는데 무산되는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감독 명함이 만들어지면 '이제 영화가 만들어지나 보다' 했는데 그렇게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명함이 여러 개 있어요. 7-8년 되는 시간인데 그 공포는 아주 깊이 자리 잡고 있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현재도 그런 불안감이 있으신가요.
제가 만든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당장 한두 편은 어떻게 버틸지 몰라도 세 편 네 편이 되면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겠죠. 그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는데 당연히 오겠죠. 그런 공포는 있어요.
만수가 중산층으로 설정돼 있는데, 집이 지나치게 좋아 보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외국인들에게는 저 집이 좋아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부동산에 관심 많은 우리 한국인에게는 그렇게 비싸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세종시 인근 변두리 타운하우스에 있는 50년 된 집이라면, 집값은 거의 제로고 부동산 가격은 그냥 땅값일 뿐이거든요. 제가 파주에 살고 있어서 잘 압니다. 만수가 살아온 과정,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직해서 노동하면서 방통대 다니고 열심히 일해서 관리직까지 올라간 사람이 이 정도 성취를 이뤘다면, 이걸 놓치기가 얼마나 싫겠는가 그렇게 생각이 들기를 바랐습니다.
만수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하셨나요.
만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요. 치통을 앓고도 치료하지 않는 건 똥고집, 고지식한 면모를 보여주죠. 면접을 볼 때조차 잘 안 먹히는 개그를 시도해요. 개그 욕심은 이병헌에게서 캐치한 부분이기도 해요.

흥행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인가요.
업계에서나 언론에서 '이 정도면 한국 영화나 영화관, 이 산업에 기운이 좀 되살아난다' 정도라고 느낄 만한, 그렇게 기사를 쓰실 만한 정도만 되면 좋겠어요. 그게 숫자로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스카(아카데미) 시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면을 갖고 있어요. 후보가 되지 않으면 일찍 휴식도 취할 수 있고 다음 작품도 시작할 수 있는 게 좋은 점이고요. 후보가 되면 몇 달 동안 바빠지고 죽음의 레이스를 시작해야 되니까 이 나이에 어려운 면도 있어요.
덜 박찬욱스럽다는 평가도 있고, 가장 대중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한국영화 부흥을 위해 의도적으로 대중성에 신경 쓴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었습니다.
한편 24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 <어쩔수가없다>는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이 출연한 블랙코미디로, 2026년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부문 한국 대표작으로도 선정됐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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