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크렘린궁 공습할 수도”…푸틴에 정면 압박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5. 9. 26.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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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장거리 무기 지원 요청에 ‘추진해보자’ 답해”
“전쟁 끝나면 대통령직 물러날 준비…휴전 중 선거도 가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다음날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크렘린궁을 공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TASS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가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면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을 공습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가 25일 보도했다. 크렘린궁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가 있는 러시아 권력의 심장부다. 사실상 푸틴의 머리 위에 직접 폭탄을 떨구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가 크렘린궁을 직접 공격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를 위해 미국의 장거리 공격 무기가 필요하며, 미국이 지원하면 즉각 사용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젤렌스키는 이날 악시오스의 시사 프로그램 ‘악시오스쇼’ 인터뷰에서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므로 (러시아처럼) 민간인을 폭격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권력의 중심부는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서 “크렘린의 관리들은 방공호가 어딘지 알아야 한다. 만약 그들이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면, 반드시 필요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가 크렘린을 직접 폭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공격하면 우리는 반드시 응답한다. 매일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발전소와 정부 청사를 잇달아 공격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응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 23일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과 드론 공장, 미사일 기지 등에 대한 공격을 인정했다”고 했다. 러시아 본토의 전략 시설에 대한 타격을 트럼프가 사실상 용인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러시아 깊숙이 도달 가능한 장거리 드론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첨단 방공 체계의 보호를 받는 모스크바를 정밀 타격하려면 미국산 최신 장거리 무기와 정보 체계의 지원이 필요하다. 젤렌스키는 이와 관련 “미국에 특정 장거리 무기 체계 지원을 요청했다”며 “우리가 원하는 무기를 어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고, 그는 ‘추진해보자’고 답했다”고 전했다. 다만 구체적 무기명은 밝히지 않았다.

이번 발언은 젤렌스키와의 직접 협상을 거부한 채 전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푸틴을 직접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역시 “반드시 쓰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 무기를 갖는 것만으로도 푸틴을 협상장으로 끌어낼 압박 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CNN은 “크렘린궁을 직접 거론한 것은 실제로 공격 위협이라기보다, 푸틴 정권을 겨냥한 심리전”이라고 풀이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젤렌스키가 ‘종전을 위해 장거리 무기 지원이 필요하다’고 서방을 공개 압박한 것”이라며 “실제 실행보다는 정치적 메시지에 무게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만일 우크라이나가 미국 무기로 러시아 크렘린궁을 실제 타격할 경우, 러시아가 이를 확대 해석해 전례 없는 수준의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시아는 이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론하며 “러시아는 지금 나토와 전쟁 중”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젤렌스키는 한편 자신의 정치적 거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내 목표는 전쟁을 끝내는 것이지 권력을 이어가는 게 아니다”라며 “전쟁이 끝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어서 “만약 수개월간 휴전이 이뤄진다면 그 기간을 활용해 의회에 선거를 실시하자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헌법은 전쟁으로 인한 계엄령 기간에는 선거를 치를 수 없게 규정하고 있으나, 젤렌스키는 “휴전이 보장된다면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했다.

젤렌스키는 2019년 집권했다. 전쟁 초기 90%에 달했던 지지율은 현재 60%대다. 지난 7월에는 반부패기구를 약화시키는 입법에 나섰다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겪기도 했다. 푸틴은 젤렌스키의 임기(5년)가 다됐다며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합법적 대표자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해왔고, 트럼프도 “젤렌스키는 선거를 하지 않는 ‘독재자’”란 주장을 하기도 했다. 젤렌스키가 선거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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