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의 실험 “출근 1시간 늦추니 아이가 웃어”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2025. 9. 2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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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부모 ’10시 출근제' 도입 4년
광주 광산구 신가동에 사는 김동춘씨. 10시 출근제로 아침에 여유가 생기면서 두 아들을 등교 시키고 있다./김영근 기자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사는 직장인 김동춘(44)씨는 지난 3월부터 4개월간 초등학생 아이들 손을 잡고 아침 등굣길을 걸었다. 회사 출근 시간이 오전 9시에서 10시로 1시간 늦춰진 덕분이었다. 김씨는 “아이들과 인사도 못 하고 출근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는데 모처럼 출근 걱정 없이 아이들과 함께 등교했다”며 “입학 철이라 더 좋았다”고 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동춘(44)씨가 지난 23일 오전 8시 3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가동 선창초등학교로 두 자녀를 데려다 주고 있다. /김영근 기자

세 부자(父子)가 손잡고 등교할 수 있었던 건 광주시가 2022년 도입한 ‘초등 학부모 10시 출근제’ 덕분이다. 출근 시간을 1시간 늦추는 대신 시가 회사에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대기업과 달리 육아 지원 제도가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만들었다.

초등학생 자녀 1명당 2개월씩 1시간 늦게 출근하거나 1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다. 그러면 시가 회사에 아이 1명당 월 40만원씩 지원금을 준다. 김씨는 아이가 둘이라 4개월 동안 1시간 늦게 출근했다. 김씨가 다니는 회사는 지원금 160만원을 받았다.

“처음엔 걱정했는데 오히려 업무 능률이 올랐어요.”

김씨가 다니는 컴퓨터 제조 업체 대표 강철원(49)씨 얘기다. 강씨는 “직원들이 여유 있게 출근하면서 아이들 걱정과 출근길 스트레스가 줄었다. 지각하는 직원도 없었다”며 “근무시간이 1시간 줄었는데도 오후 6시 전까지 딱딱 일을 마무리하더라”고 했다.

김씨처럼 10시 출근제를 활용한 직원은 51명 중 5명. 강씨는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 열던 회의를 오전 10시 30분으로 미뤘다. 그는 “직원 가족들한테 ‘너무 고맙다’는 전화도 받았다”며 “출근을 1시간 미뤘을 뿐인데 ‘1시간의 마법’이 따로 없다”고 했다.

초등생 학부모 10시 출근제는 임선주 광주시 직장맘지원팀장이 구상했다. 임 팀장은 “광주에는 육아 지원 제도를 운영하기 어려운 열악한 중소기업이 많다”며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여보려고 없는 예산을 짜내 시작했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비슷한 제도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있지만 부모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

정부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근로자가 1~3년간 주당 15~35시간씩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제도다. 광주시 관계자는 “필요한 제도지만 현실에선 부모와 회사 모두 사용하길 꺼렸다”며 “특히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쓰기 어려운 제도”라고 말했다.

부모에게 지원금을 주지만 원래 받던 월급보다 적은 경우가 많고, 회사에 주는 지원금도 1인당 최대 20만원 수준이다.

광주시가 회사에 주는 10시 출근제 지원금 40만원은 광주시 생활 임금(시급 1만2760원)에 주휴 수당과 4대 보험료, 퇴직금 등을 더해 계산한 것이다.

이 제도를 활용해 1시간 일찍 퇴근하는 부모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쌍둥이 자녀를 둔 남주연(46)씨는 “퇴근이 늦어 아이들을 태권도 학원에 보내야 했는데 4개월 동안은 학원비가 안 들어 좋다”고 했다.

회사들도 10시 출근제를 선호한다. 광주시가 작년 8월 참여 기업 12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8곳 모두 “내년에도 초등 학부모 10시 출근제를 운영하겠다”고 답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육아 지원에 회의적이었던 중소기업들이 효과를 체감한 것”이라고 했다.

직원 8명이 일하는 중소기업 대표 김영철(46)씨는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직원의 만족도와 가족적인 분위기가 중요하다”며 “육아 지원이 최고의 복지 제도인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지원 대상을 늘려가고 있다. 2022년 100명으로 시작해 올해는 500명에게 지원했다. 올해 예산은 4억원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광주에서 실험이 효과를 내자 경기 수원시, 경북도 등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도 초등생 자녀를 둔 근로자들의 10시 출근을 지원하는 예산 31억원이 포함됐다. 광주시 관계자는 “내년에 정부 사업으로 확대되면 사용할 수 있는 개월 수를 늘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채영란 호남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집은 아침 1시간이 삶의 질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며 “기업에도 충분한 인센티브를 주는 등 균형을 맞춰야 제도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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