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500억달러 현금 투자는 불가능, 다만 조용히 설득해야

조선일보 2025. 9. 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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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 관세 후속 협상이 벼랑 끝으로 가는 형국이다. 정부는 지난 7월 관세 15% 합의 등을 끌어내 “협상이 성공적”이라 자평했고, 이어진 양국 정상회담도 “합의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이라고 했다. 하지만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가 대부분 대출·보증이라던 우리 측 설명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가 ‘현금 투자’를 요구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미 측은 양보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3500억달러라는 현금을 구할 방법이 없다. 투자처를 미국이 결정하고, 한국은 그에 따라 현금을 내기만 하라는 것도 수용할 수 없다. 일본도 같은 조건이라지만, 일본은 1조3000억달러의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기축통화국 지위, 미국과 통화 스와프까지 가진 나라다. 우리와는 비교 불가다. 미 측의 완고한 자세로 협상이 난항을 겪자 우리 측 강성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 측 요구를 수용하면 “탄핵당할 것”이라거나 “외환 위기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총리는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사실상 일이 진전될 수가 없다”고 했고,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미국이 투자 수익의 90%를 요구했다”며 뒷얘기를 공개했다. 이런 얘기는 모두 미국에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선 협상을 깨자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온다고 한다.

미국이 우리 능력을 너무 넘어선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한미 관계는 관세 협상이 전부가 아니다. 한미가 서로 소리 내어 부딪치는 것은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쪽이 더 그렇다. 아쉬운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변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협상이 외부로 큰 소리를 내며 부딪치면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다. 자칫하면 자동차는 물론 반도체·의약품 등의 주력 수출품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끝까지 조용하게 협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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