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재무성 힘뺀 아베, 기재부 죽이는 이재명

류정 기자 2025. 9. 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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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아베 “재무성, 내 발목 잡아”
관료들 길들이고 돈 풀기 지속
결과는 빚 폭탄과 권력형 비리
미워도 곳간 문지기 필요하다
지난 2013년 6월 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손짓을 하며 연설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 정책을 추진하며 재무성과 각을 세웠다./AP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기획재정부를 해체하고 예산 기능을 따로 떼어내 총리실 산하에 기획예산처를 만든다고 최근 발표했다. ‘효율성’과 ‘전문성’이 명분이지만, 기재부 눈치 안 보고 예산을 주무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 같다. 김대중 정부 때 예산처를 총리 아래에 둔 적이 있지만, 산업 구조조정 등 외환 위기 수습을 위한 것으로 지금과는 목적이 달랐다. 이 대통령은 당선 전 “기재부가 왕 노릇 한다”며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다. 기본소득·재난지원금·지역 화폐 같은 민주당 정책에 제동을 건 ‘모피아’들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비슷한 불만을 가진 일본 지도자가 있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차 집권(2012~2020년) 당시 재정 팽창이 핵심인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 재정 준칙을 지키려는 재무성에 강한 반감을 가졌다. “나라가 망해도 재정 규율만 수호하면 만족한다”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정권은 무너뜨리러 온다”(아베 회고록)고 비난했다. 재무성 관료들이 ‘지속 불가능한 정책’이라며, 긴축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 쓰는 데 인색하면 민심을 얻기 힘들다. 이런 생각이 누적돼 “나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망상 수준에 이른 것이다. 아베는 재무성이 아베 부부의 지인에게 국유지를 헐값 매각한 ‘모리토모 학원 비리’로 위기를 맞은 적이 있는데, “내 발목을 잡으려는 재무성의 책략일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결국 ‘재무성 힘 빼기’에 나선다. 2014년 11월, 재무성이 추진해온 소비세 인상을 저지하고, 아베노믹스의 당위성을 확보하려고 ‘중의원 해산’ 승부수를 던졌다. 돈을 풀고 세금 깎아준다는데 싫다는 국민은 없었다. 재신임에 성공한 아베는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고, 내각인사국을 신설해 부처 고위 공무원 600여 명의 인사권을 장악한다. 그러자 소신 있던 엘리트 관료들이 힘을 잃고, 총리 비위를 맞추고 납작 엎드리는 ‘손타쿠(忖度·알아서 헤아림)’와 ‘히라메(넙치) 관료’가 생겨났다.

재무성은 가장 극적으로 변한 조직이다. 나라 곳간을 관리하던 재무성 이재국장 오타 미쓰루는 2017년 소비세 인상분을 빚 갚는 데 쓰지 않고 복지에 쓰는 ‘세수 용도 변경’에 협조하며 ‘재무성의 변절’에 앞장섰다. 같은 해 터진 모리토모 학원 비리도 손타쿠의 결과였다. 재무성은 국유지 헐값 매각 과정에 정치권이 관여한 기록을 없애려고 문서 조작을 감행했다. 죄책감으로 갈등하던 한 관료는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노동 개혁·규제 완화 같은 구조 개혁은 미진한 채 돈만 푼 아베노믹스는 전후 일본 역사상 빚을 가장 빨리 늘린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누적된 나랏빚이 GDP 대비 235%로 세계 최고, 재정 파탄 수준이지만 “국채 대부분(87%)은 국내에서 보유 중이라 괜찮다”는 둔감론도 있다. 해외에 진 빚이 적으니 외환 위기 가능성이 낮다는 논리. 하지만 일본 전문가들은 ‘정부 부채에 관한 거짓말’ 중 하나로 꼽는다. 국가가 파산하면, 국민 자산은 종잇조각이 되고, 부담은 후대의 몫이다.

이재명 정부의 ‘기재부 죽이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한국은 비기축통화국 중 부채 비율이 셋째, 위험도는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다. 재정 파탄과 권력형 비리를 피할 수 있을까. 아무리 밉더라도 쓴소리하는 곳간 문지기가 하나쯤은 필요하다.

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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