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페로 보는 시선]혐오는 누군가의 작은 손짓부터 시작한다

장면 하나. 대학원 시절 도심으로 향하는 새벽 4시의 야간 버스 안, 나는 유일한 동양인 승객이었다. 새벽같이 일터로 나가는 흑인 승객들은 내 동선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며 나를 바라봤다. 무서웠다. 마치 낯선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장면 둘.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마지막 뮤지컬을 보고 자정이 넘은 시각, 숙소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내가 탄 칸에는 흑인 남자와 나, 둘뿐이었다. 네 정거장 동안 나는 속으로 저 남자가 착한 사람이기를, 그가 손을 꽂아 넣은 주머니에 총이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해치지 말아줘, 속으로 말하면서.
안전한 공간에 발을 들이자마자 내게 든 감정은 자괴감이었다. 작가랍시고 온갖 좋은 말을 평소에 떠들고 다니는 주제에 나는 그들을 잠재적인 위험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내가 느낀 공포감과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소설에서, 아니면 뉴스에서?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느낀 감정일까? 잠시 잊고 있던 공포감이 이리나 자루츠카 피살 뉴스를 보자마자 느껴졌다.
범행 직후 체포된 데카를로스 브라운은 “내가 백인 여자를 해치웠다”고 말했다. 앞에 앉은 여성이 단순히 백인이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까.
9월15일, 미시시피주 델타주립대 캠퍼스에서 흑인 대학생이 나무에 매달린 사체로 발견됐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미국 인종차별 역사에서 무척 상징적인 사건이다. 앞으로 그 지역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다가올 혼란도 두렵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백인이든 흑인이든 아니 어느 인종이더라도, 그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캠페인 당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구호로 내세웠다.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풍요를 누리던 1950~1960년대의 미국이다. 흑인이 핍박받고, 라틴계와 아시아계는 노동자의 지위를 겨우 유지하며 여성과 성소수자는 사회적 권리가 없던 시절 말이다. 아무리 경제대국이라고 하더라도 흑인들을 게토로 몰아넣고, 이민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여성은 남성의 보호 아래 존재하고, 성소수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세상을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트럼프는 팬데믹 시절 ‘코로나’ 위에 중국인이라는 글을 덧쓴 바 있다. 혐오는 누군가의 작은 손짓부터 시작한다.
레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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