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의 시네마 천국

토요일이다. '야호, 신난다.' 초등학교 6학년인 내가 일주일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이유가 있다. 바로 주말의 명화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주말의 명화가 시작되는 시간까지 기다리기란 참 쉽지 않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버티는 나에게 엄마는 나보고 빨리 자란다. "아니, 엄마, 제가 오늘만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제 마음도 모르시면서"
나의 주말 철칙은 영화 방송 프로그램을 다 보는 일이다. 매주 방송되는 영화 패키지 프로그램은 나의 즐거움이었다. 자라고 재촉하는 엄마의 성화에도 나는 영화에 폭 빠져버렸다.
MBC 영화프로그램 주말의 명화는 1969년부터 2010년까지 41년간 방송됐다. 주말의 명화 오프닝 음악(영광의 탈출, Exodus)을 잊을 수 있을까? 웅장하게 밀려들며 대서사가 시작될 것만 같은 시그널 뮤직은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게 해주는 오랜 추억이다.
주말의 명화와 더불어 주말 밤 안방극장의 양대 산맥이었던 토요 명화. 1980년부터 2007년까지 KBS2에서 시작된 토요 명화 역시 그 오프닝 음악을 빼놓을 수가 없다. 빠빠빠 뺨 빠빠빠 뺨~♪ 유명 외국 배우 얼굴로 장식된 별들이 이어지는 화면까지 또렷하게 기억난다.
검색해보니 타이틀 시그널이 호아킨 로드리고가 작곡한 '기타를 위한 아란후에스 협주곡 제2악장 아다지오'다. 시그널 음악부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그 시절 영화 방송들, 어찌 애정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일요일에 방송되는 명화극장이 있었다. 1969년부터 2014년까지 편성, 45년간 진행된 KBS1의 영화프로그램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OST 중 Tara's Theme가 나오고 영화마다의 명장면을 보여주며 시작되는 명화극장 또한 고단한 삶을 말끔히 잊게 해주던 일요일 밤의 최고봉이었다.
방송을 통해 봤던 최애 영화들 중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에서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조던과 사랑에 빠진 마리아의 이야기이다. "당신 가는 곳엔 항상 나도 가는 거야, 알지?" 게리 쿠퍼의 절제된 감정연기는 너무 멋졌고, 명대사는 어린이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여주인공을 철저히 교육해 변신 마술을 일으킨 히긴스 교수 그리고 그와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의 뮤지컬 영화 '마이페어 레이디'.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으로 나왔던 '카사블랑카' 의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어떻게 이런 대사를, 정말 대단하다.
또 율 브리너의 연기가 돋보이던 영화. 왕과 왕실 가정교사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영화 '왕과 나'를 참 재미있게 보았다. 재미도 재미지만, 쇼생크 감옥에서 울려 퍼졌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이중창을 잊을 수 있을까? 쇼생크라는 거대한 감옥이 인간의 육신을 가둘 수 있어도 그 사람의 영혼을 가둘 수 없음 보여주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이렇게 많은 영화를 보며, 그 시절 나는 자랐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았던 영화 방송 프로그램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텔레비전만 틀면 여러 주인공의 드라마틱하며 모험 가득한 이야기들은 수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울렸으리라.
특별하고 귀한 안방영화 잔치를 즐겼던 그때 그 시절도 참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이 울고 웃으며 그 시절을 살았다.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소통하게 된 점이 오늘도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열쇠가 되어준 듯하다.
오늘도 영화처럼, 영화같이 산다. 선선한 가을 좋은 영화 한 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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