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비스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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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그래요/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이를 헌신짝처럼 경시하는 태도는 미국이 제국주의를 다시 지향하고 힘으로 약소국을 길들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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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그래요/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생명의 시인이라 불리는 정현종(1939~ ) 시인의 시집 ‘견딜 수 없네’에 실린 시 ‘비스듬히’ 전문이다. 홀로 선 나무조차 보이지 않는 공기와의 의존성이 크다는 점을 짚는다. 나무뿐만 아니라 인간도 태생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부도 서로 의존하고 독신 생활을 하는 종교인도 신과의 상호 의존성으로 영성을 높인다.
요즘 ‘비스듬히’ 대신 ‘스스로’ ‘나 홀로’를 강조하는 사람과 집단이 유독 많이 보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공급망을 훼손하고 미국 제일주의를 외친다. 관세를 협상으로 낮추고 자유무역 원리를 실현시키려는 것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기본 원리다. 이를 헌신짝처럼 경시하는 태도는 미국이 제국주의를 다시 지향하고 힘으로 약소국을 길들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최근 포스코그룹이 컨테이너 해운 운송이 주력인 선사 HMM 인수를 검토 중이다. 철강업이 주력인 포스코는 국내외 선사들과 장기 계약을 맺어 벌크 화물을 조달하는데 앞으로는 HMM을 인수해 이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하지만 국내 해운선사들이 강력 반발한다. 벌크 화물(철광석 등 비컨테이너 화물) 선사들 생존이 위협받고 컨테이너 운송업 생태계 훼손이 우려된다는 게 반대 요지다. 컨테이너 운송업은 화주들과의 오랜 신뢰 관계, 전문적 마케팅 노하우가 중요하다. 포스코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해운업계는 주장한다. 포스코가 HMM을 인수했다가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운영에 실패해 매각해 버리면 그동안 해운업 생태계는 망가진 이후라는 것이다.
시 ‘비스듬히’는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온다. 청소년이 인간의 불완전성, 산업계 공급망의 상호 의존성을 이른 시기에 알아두라는 의도 같다. ‘비스듬히’는 글로벌 공급망 훼손, 산업 생태계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 정권을 획득하면 반대파 제거에 혈안인 사람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절대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이 시가 대학 입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이나 논술시험에도 자주 등장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학생들이 상호 의존성이라는 원리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겠는가.
정옥재 서울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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