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토끼·소금…상처와 회복을 잇는 예술적 제의

최명진 기자 2025. 9. 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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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미술관 기획전 ‘장미 토끼 소금: 살아 있는 제의’
‘상실의 시대’에 사는 ‘지금-여기’, 우리들에게 건네는 위로
각기 다른 감각과 언어·몸의 기억…삶을 잇는 예술적 공유

사진 위로부터 박찬경 사진 연작 ‘모임’과 가운데 놓인 설치작업 ‘맨발’, 김주연作 ‘Metamorphosis’, 이수경作 ‘번역된 도자기’

무의식으로 통하는 관문처럼 화면 가득 피어난 ‘장미’, 불교 설화를 담아낸 그림 한가운데 있는 ‘토끼’, 그리고 맨발로 밟아보는 ‘소금’의 결까지.

내년 1월25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 ‘장미 토끼 소금: 살아 있는 제의’는 상실과 재난 이후 단절을 넘어 삶을 잇는 예술적 제의를 제안한다.

전시는 종교 의례로서의 제의가 아니라, 세계와 다시 만나는 실천으로서의 제의를 현재형으로 불러낸다. 자연재해·인재, 전쟁과 기후위기 시대 고통을 해석하고 치유하며 타자와 감응하려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에 둔다.

초대작가는 이수경, 박찬경, 김주연.

세 작가의 서로 다른 형식은 감각과 언어, 몸의 기억을 통해 ‘지금-여기’의 감각을 공유한다.

이수경은 깨진 도자 파편을 잇는 대표 연작 ‘번역된 도자기’를 오랜만에 선보인다. 전국을 돌며 모은 파편을 금으로 이어 붙인 그의 작업은 부서진 기억과 시간을 붙잡고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몸짓처럼 다가온다. 최근 회화 연작 ‘오, 장미여!’에서는 전생 체험의 기억에서 출발한 장미 이미지를 무의식의 관문으로 확장했다. 어디서든 펼쳐놓을 수 있는 ‘이동식 사원’ 연작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불화의 뒷모습을 그려낸 화면은 현대인의 내면을 위한 성역을 제안한다.

박찬경은 전통 신앙을 오늘의 현실과 나란히 놓고 바라본다. 사진 연작 ‘모임’은 붓다의 열반 장면에서 주변에 모인 동물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설화 속 애도 공동체를 각 프레임으로 고립시켜 오늘의 시선으로 재배치한 것이다. 전시장 가운데는 두 그루 사라나무를 형상화한 나무 기둥 사이 천천히 움직이는 기계장치 ‘맨발’이 놓여 있다. 영상 ‘늦게 온 보살’은 불교 고사와 현대 재난의 풍경을 교차시키며 집단적 상실과 회복의 가능성을 묻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처음으로 회화 연작을 공개했다. 부처의 열반을 그린 전통 불화에서 영감을 받아, 여러 동물 중 오직 토끼만 남겨진 그림을 선보인다. 이 장면은 옛 설화가 오늘날에도 새로운 해석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주연은 삶과 죽음, 소멸과 탄생의 순환을 설치로 체감하게 한다. 신문과 이끼를 층층이 쌓아 올린 ‘메타모르포시스’ 연작은 기록의 무게가 생명의 토양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며 잊히는 신문 위로 새싹이 자라나는 모습은 과거의 잔해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관람객이 맨발로 앉아 체험하는 설치 ‘기억 지우기’에서는 소금의 정화적 상징이 직접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잊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고 내려놓는 몸짓은 곧 치유의 제의가 된다.

전시 주제인 세 단어 ‘장미·토끼·소금’은 곧 작가별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수경에게 ‘장미’는 애도의 감정을 불러내는 상징이며, 박찬경에게 ‘토끼’는 남겨진 이들의 상실을 드러내는 장치다. 김주연에게 ‘소금’은 정화와 치유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썼지만 세 작가 모두 ‘예술적 제의’를 통해 지금 여기의 삶과 연결되는 경험을 제안한다.

전시는 각 구역마다 주제가 뚜렷해 관람하기 편하다. 작품 설명을 보려 애쓰기보다는 직접 체험하고 느껴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관객은 파편을 이어 붙이고 기억을 어루만지며 다시 걸어 나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마주한다. 제의는 이렇듯 과거의 의식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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