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 성인영화감독, 착취의 전통을 뒤집다

박경호 2025. 9. 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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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위시먼의 ‘역사적 재평가’ 시도
역동적 페미니즘 영화 이론 성과 집약

■ 도리스 위시먼의 영화들┃알리시아 코즈마 외 10명 지음. 김효정 옮김. 교유서가 펴냄. 416쪽. 2만8천원


도리스 위시먼(Doris Wishman·1912~2002)은 세계 최초의 여성 성인영화 감독이다.

그는 포르노 영화가 성행하기 이전 ‘누디 큐티스’(Nudie cuties)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나체 영화들로 시작해 섹스플로테이션의 중추라 할 수 있는 하드코어 영화들, 그리고 퀴어 다큐멘터리와 에로틱 호러까지 다양한 성인 영화들을 연출·제작했다.

동시에 위시먼은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편수의 영화를 만든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위시먼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총 31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위시먼은 왜 주목받을까. 조앤 호킨스는 ‘도리스 위시먼의 영화들’ 서문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이 책은 착취와 언더그라운드 분야의 주목할 만한 공백을 메울 뿐만 아니라 착취와 주류 영화와의 관계에 대한 더 큰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독립 제작에 뛰어든 여성들에게 열려 있는 길(지위 고하를 막론하고)과 미국 독립영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종종 간과되는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탐구한다. 나아가 1960~70년대의 성 혁명과 그 시기의 큰 사회적 격변과 맞물려 변화하는 관습을 심도 있게 다룬다. (중략) 도리스 위시먼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착취 영화 산업은 보이즈클럽(Boy’s Club)이 아니었다.” (책 38쪽 중에서)

위시먼은 영화사에서 가장 남성중심적인 섹스플로테이션 산업에서 가장 여성주의적인 성인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으로 정의될 수 있다. 위시먼은 로저 코먼, 데이비드 프리드먼, 래리 코헨, 존 카펜터, 존 워터스 등 전설적인 ‘B급 영화’ 감독들에게 영향을 줬다. 하지만 주류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영화감독 위시먼은 영화사에서 크게 간과돼 왔다. 전통적인 학문 연구에서 생략된 장르인 ‘착취 영화’(성인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위시먼은 자신의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 배급까지 했다. 남성이 지배적인 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그는 2002년 사망할 때 까지 큰 재정적 지원 없이 끈기 있게 영화를 계속 제작하기도 했다. 20세기 미국 저예산 독립 영화의 제작 역사를 알고 싶다면 위시먼을 피할 수 없다. 위히먼은 필요에 따라 문화 산업의 다른 부분에서는 실험적이라고 여겨지는 기술을 종종 활용하는 혁신을 보여줬다. 이를 테면 꽁초로 가득 찬 재떨이, 등장인물의 무릎이나 손이 갑자기 클로즈업되는 핸드헬드 트래킹 샷 등이다. 오늘날 예술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법들이다.

이 책의 저자로 참여한 학자들은 위시먼의 영화들이 어떠한 방식과 기술적 속임수로 여성 착취의 전통을 전복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맥켄드리는 위시먼의 영화에 대해 “깊게 들여다보면 이 영화들은 남성 억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의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이상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는데 이에 대해 저자 중 한 명인 해나 그린버그는 “위시먼이 장르적 관습을 미묘하게 타파하는 것은 그녀가 구성하는 놀라운 내러티브에서 볼 수 있지만,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남성 폭력에 대한 거부를 담은 내러티브를 통해 나체의 여성에 대한 오염된 시각은 없이 급진적인 여성주의의 이상을 제시하는 위시먼만의 창의적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이 책은 위시먼을 중심으로 역동적인 페미니즘 영화 이론의 성과를 모았다. 원서의 저자로도 참여한 영화평론가 김효정(Molly Kim) 박사가 책을 번역했다. 김효정 박사는 이 책을 쓰고 번역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첫번째는 1970년대 한국의 호스티스 영화들과의 만남이다. 미국의 섹스플로테이션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호스티스 영화가 웬 말인가 싶겠지만 사실 두 영화는 여성의 성을 매기로 한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유사성을 공유한다. (중략) 특히 나는 여성의 센터피스, 즉 호스티스 여성(성 노동자), 그리고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영화적으로 지현되는 도식과 메커니즘, 그리고 정치적인 은유에 매료되었다(영화 자체에 대한 매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책 25쪽 중에서)

위시먼의 영화들을 관람하는 것은 어렵고 제한적이지만, 그를 다각도로 분석한 연구자들의 글을 통해 페미니즘 영화의 한 길을 따라가보는 것도 좋겠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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