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2장] 집강소-민본의 시대(238회)

남도일보 2025. 9. 2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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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수 집강이 다시 소리쳤다.

"집강소를 설치하는 것은 이런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요. 그러기 땀시 이런 악질 무뢰배를 잡아들여야 할 것이오."

다른 사람이 볏단 위에 올라섰다.

"우리가 집강소를 설치하는 것이 원수를 갚는 것이 목적이 아니올시다. 이놈은 이것이 문제다 하여 족치고, 저놈은 저것이 문제다 하여 조지면 남는 것이 없고, 또한 민심이 사나워져버릴 수 있소이다."

"그러면 어제의 죄를 용서하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준다는 것을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그러니께 반성하고 회개하면 받아줄 아량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오. 과거의 허물이 이미 제도로서 굳어진 것인디, 그것을 하루아침에 나쁜 것이다 하고 밟아버리면 또 다른 반발이 생긴다는 것이오."

도 집강이 여러 말을 무시하고 두 벼슬을 산 부호들을 족쳤다.

"당신들 죽여 불자고 하는디 그렇게는 할 수 없고, 대신 반성을 어떻게 하는지를 묻고 죄를 살피겠소."

이곳저곳에서 "옳소" 하고 환호성을 올렸다. 양반 내기를 혼쭐낸다는 것에 군중들은 흡족해하고 있었다.

"반성과 회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게 묻자 허 생원이란 자가 말했다.

"재산을 내놓겠소."

"어떻게 재산을 내놓겠다는 것인가."

"동구 앞에 텃논이 열 마지기 있는디 고걸 내놓겠소."

잠시 생각하던 도 집강이 다시 물었다.

"집에 하인, 노비들이 몇 명인가."

"스무나무 명 될 것이오."

"죄를 사 받는 값으로 그들을 모두 석방하시오."

"옛? 그러면 농사는 누가 짓게요?"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일꾼을 사서 품삯을 주든, 월급으로 쳐주든 니가 알아서 행 할 것이오. 밥만 먹여주고 그 하인에 아내, 자식들까지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소."

"그런 법이 어디 있가니요?"

"동학농민군 폐정개혁안에 있다. 전라감사와 합의하기를 열다섯 개 항목의 폐정개혁안을 지방자치 기구인 집강소에서 실시하기로 하였도다. 말을 듣겠느냐, 여기서 모가지가 잘려나가겠느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번에 "알겠습니다."하고 허 생원이 일본 예법으로 머리를 계속 조아렸다.

"그 옆의 악질은 이름자가 무엇이렷다?"

"네 이놈, 박 진사 어른을 갖다가 악질이라니! 뒤가 두렵지 않느냐?"

"당신은 진사 깨나 하면서 여전히 오만하군. 저 자를 매우 쳐라."

농민군사 둘이 달려들어 그를 작대기로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그의 이마가 깨지고, 입술이 터지고, 어깻죽지가 늘어졌다.

"이렇코롬 백성들이 관아에 붙잡혀가서 맞아부렀다. 당신의 성정으로 보아 사또 벼슬을 따면 이렇게 백성들을 잡아조졌을 것이다. 앞으로 혹 벼슬을 할지 모르니 매는 이렇게 때리는 것이다, 하고 시범을 보인 것이다. 알았는가?"

축 늘어진 박 진사가 숨을 헉헉거리며 기진맥진하였다. 반말에 반발하던 그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그가 실살 빌었다.

"나가 철이 덜 들었던 개비요. 살펴주시오."

"하긴 당신들도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사또나 관찰사가 부정으로 벼슬을 파니 순박한 부호들이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달려들었을 것이니, 당신들 또한 피해자요."

그러자 박 진사가 소리 내어 울었다. 돌이켜보니 억울할 것도 서러울 것도 없었다. 분명 자신의 재력을 가지고 부정하게 벼슬을 사려고 했고, 그것이 들통났을 뿐인 것이다.

"억울하오?"

"맞어봉개 불쌍한 농민들 심사를 알겠소. 나를 일깨워 주어서 고맙소. 앞으로는 사람답게 살랍니다."

그때 농민군사 셋이 한 젊은이를 붙잡아 왔다.

"누구냐?"

"이런 상녀르 새끼가 나가 동학군에 가담하여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나으 내자를 봐부렀소. 겁간한 새끼요."

행색이 꾀죄죄한 병사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