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이 보여준 ‘HBM’의 위력…‘11만 전자’ 기대감↑
줄줄이 목표주가 상향…차세대 HBM 주도권 놓고 사활 건다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실적 부진을 면치 못했던 삼성전자를 향한 시선이 바뀌고 있다. 엔비디아에 공급할 '고대역폭메모리(HBM)' 품질 테스트 통과 소식에 '아킬레스건'으로 여겨졌던 HBM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면서 주가는 뛰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적인 가격 상승 추세)'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면서 증권가에선 목표주가를 11만원대까지 올리는 상황이다. 다만 엔비디아에 차세대 제품인 HBM4 공급이 얼마나 이뤄지냐에 따라 삼성전자의 실적과 주가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자는 전거래일보다 700원(0.59%) 오른 8만6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8만62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달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날 종가 기준 이달 초(6만7600원)와 비교하면 27.3%가 올랐다. 지난 6월초까지 5만원대에서 횡보하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주가가 '8만 전자'를 넘어 '9만 전자'를 바라보고 있는 주된 이유는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 12단 제품 품질 테스트 통과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져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삼성전자는 품질 테스트를 통과해 구매 주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며 "2024년 2월 삼성전자가 HBM3E 12단 제품을 개발한 후 18개월 만에 이뤄진 성과다. '1a D램'을 재설계해 성능이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에 이어 세 번째로 HBM3E 12단 제품 납품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오는 4분기가 유력하다.
납품 물량 자체는 크지 않지만 HBM3 발열 및 신호 결함 등 기술 논란을 씻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6세대 제품인 HBM4를 납품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HBM의 판매 확대는 실적 상승과 직결된다. 이는 마이크론 실적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지난 23일(현지 시간) 마이크론은 2025 회계연도 4분기(6~8월) 매출이 113억2000만 달러(약 15조7914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46%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무려 126% 늘어난 39억6000만 달러로 나타났다.
시장의 기대를 웃돈 '어닝 서프라이즈'의 배경은 HBM이다. 마이크론은 4분기 HBM 매출이 20억 달러(약 2조8026억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분기 기준 최고 실적이며, 연간 환산 시 약 80억 달러 규모에 해당한다. 마이크론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과 고성능 서버용 메모리 수요 증가가 매출과 이익률 개선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분기 HBM 시장에서 마이크론은 점유율 21%로, SK하이닉스(62%)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3위는 삼성전자(17%)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의 1/3에도 못 미치는 HBM 점유율만으로도 실적 반전을 꾀할 수 있었던 셈이다. 삼성전자의 HBM3E 엔비디아 납품에 기대감에 커지는 이유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 HBM4에 달린 실적
AI 투자 붐으로 메모리 산업이 장기 호황을 맞이할 것이란 예상도 삼성전자 주가 부양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최근 발간한 리포트 '메모리 슈퍼사이클–AI의 부상으로 모든 산업에 호황'을 통해 "HBM을 둘러싼 기회가 업계 전반의 성장률을 상회하고 있으며, AI 서버와 모바일 D램 수요 확대에 따라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세도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급 부족이 전방위적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메모리 산업은 2027년경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최선호주(Top Pick)' 의견을 유지하며, 목표주가를 기존 8만6000원에서 9만6000원으로 12% 올렸다.
국내 증권사들도 목표주가 상향 조정 대열에 합류했다. 미래에셋증권이 가장 높은 목표가인 11만1000원을 제시한 가운데 지난 한 주 동안 IBK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신영증권 등 8개 증권사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0만원 이상으로 높여 잡았다. '11만 전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이유다.
관건은 차세대 HBM인 HBM4 납품이 얼마나 빨리 이뤄지느냐에 달려있다. 엔비디아는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에 HBM4의 속도 상향을 요구하고 있으며, HBM4가 탑재될 AI 반도체 '루빈'의 양산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엔비디아가 요구한 HBM4의 사양 중 하나는 초당 10기가비트(10Gbps) 이상의 핀 속도다. 이는 HBM과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앙처리장치(CPU)를 연결하는 데이터 통로(핀)의 처리 속도를 뜻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10Gbps 속도를 충족했다고 공식화한 가운데, 삼성전자도 요구 성능을 맞춘 샘플을 납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은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주요 고객사 요구에 맞춰 대역폭을 최대 11Gpbs로 높인 HBM4 고객 샘플을 전달했고 내년 상반기 첫 제품을 출하할 계획"이라고 했다. 6세대 HBM 주도권을 놓고 경쟁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HBM4는 공급사들 중 가장 높은 속도를 구현해 엔비디아의 성능 상향과 물량 확대를 동시에 충족시켜 경쟁사 대비 유리한 입지 구축이 전망된다"며 "이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강력한 레퍼런스로 작용하고 북미 빅테크 업체들의 HBM 공급 물량도 동시에 급증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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