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AI시대, 이젠 가상 명절문화 시대가 도래할까?

추석이 다가온다.
예부터 한가위는 그야말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속담이 말해주듯, 풍요와 정(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의 명절 풍경은 크게 바뀌었다.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동 제한이 남긴 후유증으로, 명절마다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예전보다 한결 줄어들었고, 차례에 참여하는 인원도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이제는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이 명절의 또 다른 관례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 집안은 520년을 이어온 16대 종가집으로서, 세월이 흘러도 조상을 기리는 제례와 명절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회 전반에 걸친 저출산·고령화로 후손이 갈수록 줄어들고, 명절에 모이는 사람조차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이는 종가와 같은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집안일수록 더 크게 체감하는 문제다.
오늘날 세상은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와 연결되는 시대다. AI와 메타버스, 가상현실 기술은 이제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굳이 물리적으로 고향에 가지 못하더라도, 가상 차례 공간을 마련해 가족이 함께 접속하여 마음을 모으는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예컨대, 전통 차례상을 3D 이미지나 AI가 재현해두고, 각자가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접속해 절을 올리며 추모의 마음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조상 앞에 절을 드리는 정성은 동일하지만, 공간과 거리를 뛰어넘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점차 의미 있는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시기 일부 종교단체나 기관에서 온라인 제례나 가상 추모관을 운영한 사례는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다.
차례상에 진수성찬이 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조상을 기리고, 가족이 마음을 함께한다" 는 본질이다. 고향에 가지 못한 이들도 가상 차례에 참여한다면, 해외에 있든, 타지에 있든 조상과 가족 앞에 함께 선 듯한 위로와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오히려 젊은 세대가 명절을 부담이 아닌 "참여 가능한 전통" 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특히 아이를 낳지 않는 가정이 늘고, 가족 규모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가상 명절문화는 전통을 이어가는 하나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명절을 '부담'으로만 느끼지 않고, 어디서든 쉽게 접속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전통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통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적응하며 생명력을 이어왔다. 과거에도 명절의 음식, 예법, 차례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져 왔다. 오늘날 AI시대에 접어들며, 우리의 전통 명절 역시 '가상'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빌려 적응해 나갈 것으로 예견된다.
어쩌면 수십 년 뒤 우리의 후손들은 가상 차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방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의미일 것이다. 명절마다 가족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나눈다는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추석,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명절 문화를 고민해야 한다. 가상 차례와 가상 차례상은 단순한 기술적 상상에 그치지 않고, 저출산과 인구감소 시대 속에서 점차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
AI시대의 명절은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완성된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 가족을 잇는 마음이야말로 한가위 달빛처럼 변함없는 가치다. 그 마음을 담는 그릇이 이제는 실물이 아닌 가상으로 변해갈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추석의 풍요와 따뜻함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