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힙’한 원로의 죽비 “가짜가 진짜를 죽이는가”

임인택 기자 2025. 9. 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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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문학 거장 현기영,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
상 제정 이래 첫 국내작가…특별상은 김기창
제9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 특별상을 각각 수상한 작가 현기영(84)과 김기창(47). 서울 은평구 제공

“현기영을 재발견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허허허. 나이가 많다는 건 죽음을 많이 본다는 겁니다. 제가 여기서 보여드리는 것, 계속 쓰고 또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미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민중 문학의 살아있는 거장 현기영(84) 작가가 말했다. 제9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25일 소감을 밝히는 자리였다. 올해로 등단 반세기를 맞은 현 작가는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에겐 정년이 없다. 그렇게 쓰다 보니 상까지 받게 됐다”며 “작가의 길은 정년이 없는 인생길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저는 써야 하겠다”고 말했다.

근년 주요한 문학의 장에서 현 작가만큼 ‘소환’되는 이가 없다. 여든 넘어 완성한 세권짜리 장편소설(‘제주도우다’)로 제주 4·3의 스러진 청년들을 우뚝 살리고 붙든 게 불과 2년 전. 그해 말 현 작가는 전년도 한강(55) 작가가 받은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24년엔 12월 ‘윤석열 계엄’ 사태 뒤 맞은 한국작가회의 50주년 행사의 선두에서, 올해는 이달 12일 시작한 서울국제작가축제의 개막 대담에서 대중과 독자를 만났다. 시대가 그를 가만두지 않는 격이고, 그는 가장 ‘힙’한 원로가 되어 문학의 소명을 역설하는 데 ‘노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 작가는 이날 ‘탈진실’을 가장 위중한 사태로 꼽았다. “가짜가 진짜를 공격해 진짜를 죽이고 있다”며 “진리와 진실은 변하지 않는데, 양면이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언론과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학생들이 극우적 사고로 휩쓸리는 현상”을 지적하며 “진실을 말할 수 없게 하는 제도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문학 또한 긴요해진다. “민중 파괴의 전쟁과 국가폭력에 대해 문학은 발언해야 한다”며 “사건을 다룬 완성도 높은 문학이 없는 한, 그 사건은 존재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작가의 말대로다.

현 작가는 1960년대 서울대 사범대 졸업 뒤 영어 교사로 20년 재직하며 초기 창작을 병행했다. 1941년 제주 출생으로, 제주 4.3을 처음 알리면서 고문의 이유가 되고 10년 넘게 금서로 묶였던 단편 ‘순이 삼촌’(1978)을 표제작으로 한 첫 소설집 ‘순이 삼촌’을 필두로,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지상에 숟가락 하나’ ‘누란’ 등을 펴냈다. 2000년대 첫 작가회의 이사장(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을 맡아 민주·사회운동을 이끌었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기영의 재발견’은 작가의 농에 불과하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선정위(위원장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이날 “현기영의 문학은 초유의 역사적 비극이 장기간의 세월 동안 한 작가의 문학적 열정, 팽팽한 미적 긴장, 극진한 예술혼에 의해 얼마나 우뚝한 문학적 성채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선정 배경을 밝혔다. 현 작가는 한발 나아가 “유감스럽게도 4·3문학은 잘 팔리지 않는다”면서도 당위를 넘어선 “정교한 미학적 전략”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진지한 가치들보다는 가볍고 관능적인 것들을 좇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 자신은 4·3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려고 했는데 그래봐야 일부”라며 “제주는 그토록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라, 이제 젊은 작가들이 세부적이고 조그만 일화를 문학 속에서 다뤄내는 일이 중요하다. 많은 일화가 모이면 4·3의 총체에도 접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했다.

올해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은 장편 ‘마산’을 쓴 김기창(47) 작가에게 주어졌다. 김 작가는 이날 “마산이란 도시의 의미, 한국의 정치적·산업적 근대화와 맥을 같이하는 의미가 소설에 담겨있다”고 말했다. 창원으로 통합되며 사라진 도시 이름을, 출판사 제안과 달리, 제목에서 포기할 수 없던 배경이다. 2014년 장편 ‘모나코’로 등단한 김 작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 더이상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공간이 되었다는 비탄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의 한숨이 아니다”며 “소재를 가리지 않고, ‘정의’라는 기준에서 작품의 역할을 고민하며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의제를 던지고 싶다”고 밝혔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통일문학을 선도했던 작가 이호철(1932~2016)을 기리며 서울 은평구(현재 구청장 김미경)가 2017년 제정한 국제문학상으로, 국내 작가가 받기는 현 작가가 처음이다. 상금은 본상 4천만원, 특별상 2천만원. 시상식 및 수상 작가와의 만남은 26일 오전 10시부터 이호철북콘서트홀에서 진행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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