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재판과 조희대, ‘사법 울분’의 시대 [아침햇발]

박용현 기자 2025. 9. 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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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현 논설위원

프랑스 역사에는 사법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도저하게 흐른다. 대혁명 때 민중의 분노가 왕보다 먼저 향했던 대상은 앙시앵 레짐의 상징인 법관들이었다. 이후 황제의 등극과 왕정 복고, 공화정, 다시 황제 통치가 갈마드는 혼란기 끝에 성립된 제3공화국(1870년)에서도 사법관들에 대한 적개심이 표출됐다. 구체제를 옹호하며 공화주의를 흔들려는 사법관들을 응징하기 위해 법관 징계 기구인 ‘최고사법관회의’를 만들었다. 이 기구는 현재까지 변모·유지되며 법관 인사와 징계 권한을 행사한다.

사법부의 행태는 우리라고 다르지 않았다. 박정희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려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1975년 4월8일 대법원이 8명의 사형을 확정했고 이들은 바로 이튿날 새벽 처형됐다. ‘사법살인’이었다. 그러나 사법부가 아무리 독재 권력의 마름 노릇을 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고약한 판결을 반복해도 대다수 시민은 법관에 대한 경의와 흠모를 내려놓지 않았다. 놀라운 관용이었다. 그에 대한 사법부의 응답이 ‘더욱 가차 없는 배반’이었다는 점에서 가련하기까지 한 인내였다.

화제가 되고 있는 ‘초코파이 재판’은 시민의 삶을 대하는 사법의 태도를 새삼 확인해준다. 새벽 근무 중 사무실 냉장고에서 초코파이와 커스터드 1050원어치를 꺼내 먹었다고 절도범이란 낙인을 찍는 게 법의 정도인가. 2011년에는 버스 요금 800원을 횡령(!)했다며 기사를 해고한 회사 쪽을 편든 판결이 있었다. 해고된 버스 기사는 막노동으로 다섯 식구를 부양해야 했다. 회사 쪽 변호사가 재판장의 고교 후배라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더 잔인한 배반은 없다. 이 판결을 내린 오석준 판사는 지금 대법관이다. 그리고 2025년 5월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날림 판결’을 강행함으로써 ‘대선 결과를 판사들이 정하겠노라’ 선언했다. 지귀연 판사는 시민의 피를 제물 삼아 독재자가 되려 했던 내란 우두머리를 석방했다. 거기에 동원된 법 논리는 더 이상 법이란 것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일상의 작은, 그러나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재판에서부터 헌법 질서를 흔드는 거대한 재판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하찮게 내려다보는 사법부의 표독한 맨얼굴이 드러났다.

이제 시민들도 꾹꾹 눌러왔던 인내를 내려놓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51.4%(미디어토마토), ‘사퇴·탄핵’ 45.4%(한국사회여론연구소)라는 여론조사 수치는 사법부를 향해 들끓는 울분까지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이 울분의 정체는 무얼까. 사법부가 나의 정의와 권리를 지켜주기는커녕 오히려 짓밟고 약탈하는데도 나는 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느냐는 상실감일 것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우리가 갈아치울 수 있는데, 적어도 한표는 내게 주어지는데, 왜 법관만은 응징할 아무런 방도가 없느냐는 제도적 절망일 것이다.

같은 울분을 느꼈을 프랑스 시민들은 최고사법관회의를 만들었다. 이름과 달리 15명의 구성원 중 법관은 6명뿐이고(이들도 판사들이 투표로 뽑는다) 나머지는 외부 인사다. 사법 독립이 그들만의 ‘동업주의’로 변질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또 외부 인사 중 6명은 대통령과 의회가 지명한다. 법관 인사와 징계에 민주적 의사 반영의 통로를 낸 것이다. 2008년에는 헌법 개정으로 판사에 대한 징계를 일반 시민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독일은 행정부와 입법부로 구성되는 법관선출위원회가 법관 임용권을 갖는다. 영국은 2006년 독립된 법관인사위원회를 창설했다. 위원장은 비법조인이며 15명의 위원 중 5명도 일반 시민이다. 현직 판사는 6명만 참여한다. 미국은 22개 주에서 판사를 아예 선거로 뽑는다. 나머지 주에서도 정부와 의회가 임명권을 갖는다.

재판은 외부 간섭 없이 담당 법관에게만 맡긴다는 게 사법 독립이다. 대신, 법관이 이 같은 전권을 위임받을 만한 인격과 소양을 갖췄는지, 어떤 판사를 중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마저 법관들에게 맡겨놓을 수는 없다는 게 앞서 본 제도들에 스며 있는 민주주의 원리다. 법관으로 하여금 주권자를 존중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대법원장 1인이 사법부를 움켜쥐고 법관들은 그 눈치만 보는 구조에선 오히려 개별 판사의 독립성이 무너진다. 견제받지 않는 사법부는 주권자가 사라진 법관들의 왕국, 조희대의 왕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비로소 사법 독립의 본령에 가닿을 수 있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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