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뉴욕의 가을, 파리의 봄, 인천의 계절은?

미국 작가 에이모 토울스(Amor Towles)의 장편소설 <우아한 연인>에는 도시와 계절에 관한 인상적인 글이 나온다. "모든 도시는 저마다 낭만적인 계절이 따로 있다. 해마다 한 번쯤, 도시의 건축과 문화, 조경이라는 요소들이 태양의 운행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거리의 스쳐 지나가는 남녀들에게 유난히 로맨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빈의 크리스마스, 파리의 4월이 그런 때다. 뉴욕 사람들이 가을에 느끼는 감상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읽으며, 한국 주요 도시와 계절을 떠올려 보았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진해는 봄(벚꽃), 부산은 여름(해운대), 속초는 가을(설악산 단풍), 제주는 겨울(한라산 백록담)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인천의 계절은 언제일까? 도시마다 계절이 있다는데, 인천은 언제 가장 로맨틱하게 청춘들이 사랑에 빠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감정을 불러오는가? '인천의 계절'을 검색해 보니, 뜻밖에도 인천도시공사(iH)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상이 올라왔다. 젊은 청춘의 설렘을 인천의 명소들과 연결한 짧은 영상은 잔잔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신선하고 따뜻한 인상을 남겼다.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재즈곡 '오텀 인 뉴욕(Autumn in New York)'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뉴욕의 가을… 달동네를 메이페어로 바꿔요… 센트럴 파크의 벤치에서 뉴욕의 가을을 즐기세요." 인천을 뉴욕에 비길 수는 없겠지만, 인천을 배경으로 한 노래로는 '연안부두', '이별의 인천항'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들 노래에서는 '오텀 인 뉴욕'처럼 깊은 정서적 울림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도시의 건물, 장소, 거리는 그 자체로 무미건조한 구조물이 아니라, 보고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남기고, 정서를 자극하는 상징이 되어야 한다. 뉴욕의 9월은 센트럴 파크에서 물들어지며, 파리의 4월은 에펠탑과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인천의 계절은 언제이며,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까? 필자는 인천의 계절을 가을이라 생각한다. 짧고 강렬한 여름을 지나, 차분히 성찰하며 사색하는 계절. 개항장 골목에서 마주치는 가을 햇살, 월미산 단풍, 연안부두 석양은 모두 낭만적 장면을 연출한다. 도시의 계절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다. 인천이 진정한 가을의 도시가 되려면, 단순한 풍경을 넘어 시민과 여행객의 마음에 추억으로 남을 장소, 가슴 설레는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뉴욕의 가을이 센트럴 파크 벤치에서 시작되듯, 인천의 가을도 개항장, 송도, 인천 대공원의 한 장면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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