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한계기업 비중 1년새 10%P 급증

홍태화 2025. 9. 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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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기업 비중 17.1% 14년만 최고
업황 부진에 금융권 건전성 부실↑
30일 석화채권단 자율협의회 협약
자구노력 전제 금리·상환 지원할듯
특정 산업의 구조적 성장 부진으로 우리나라 한계기업 비중이 치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천NCC와 롯데케미칼, LG화학 공장 등이 입주한 여수 석유화학단지 [헤럴드 DB]

사업으로 번 이익으로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 중 석유화학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1년새 10%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벼랑 끝에 몰린 석유화학 업계의 위험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전폭적인 금융지원으로 국내 주력 수출 업종인 석유화학의 조속한 정상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상황(9월)에 따르면 2024년 말 전체 외감기업에서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기업 수 비중은 17.1%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0.7%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이 정도로 한계기업 비중이 높았던 것은 2010년 이후 처음이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1을 하회하는 기업을 뜻한다. 즉,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조차 감당 못 하는 기업이다.

특히 신용공여액 기준으로 보면 글로벌 공급과잉 이슈 등이 부각되고 있는 석유화학 업종이 한계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경우 2023년 3.5%에서 2024년 14.0%로 급증했다. 1년새 10%포인트 이상 늘어나 한계기업 10곳 중 1곳 이상이 석유화학 기업일 정도로 석유화학 기업의 금융 안정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특정 위험 업종에 자금을 대준 금융기관의 건전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안정 상황 점검을 주관한 신성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경기적·구조적 업황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업종의 기업 부실 증가로 관련 익스포저가 큰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건전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며 “건설 및 지방 부동산 경기 부진 장기화, 일부 산업 구조조정 등으로 부실이 추가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 노력은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권이 석유화학 유동성 지원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측면 지원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채권금융기관이 자율협의회를 꾸려 구체적인 금융 지원 방안의 틀을 마련함에 따라 석유화학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도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오는 30일 첫 공식 회의를 열고 자율협의회 운영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다.

이번 협약에는 석유화학 기업의 강력한 자구노력을 전제로 적극적인 금융 지원에 나선다는 원칙 아래 금리 감면이나 상환기간 연장, 신규 대출 등 구체적인 금융 지원 방안과 함께 신청 절차, 대상 등 향후 계획에 대한 윤곽이 담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금융권은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주재한 ‘석유화학 사업재편을 위한 간담회’에서 기업·대주주의 자구노력과 사업재편 계획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채권금융기관 공동 협약을 통해 금융 지원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이번 협약 체결은 채권단의 금융 지원 원칙이 구체화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업계는 평가한다.

핵심은 석유화학 기업이 내놓을 자구계획의 추체성과 실행 가능성으로 꼽힌다. 금융권은 기업과 대주주가 책임 있는 재무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경우에만 지원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자기자본 확충, 비핵심 자산 매각, 경영 효율화 등이 전제된 이후에야 채권단의 지원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산은 관계자는 “금융이 앞장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석유화학 업계가 과잉생산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핵심이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금융은 지원하는 개념”이라며 “개별 기업의 사업재편 계획이 나오는 것을 보고 움직일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협약은 개별 석유화학 기업이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 부담을 더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계기업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의 비중도 더 상승했다. 한계상태가 3년 이상인 기업의 비중은 지난 2023년 36.5%에서 지난해 44.8%로 높아졌다. 한계기업 중 정상상태로 회복되는 기업의 비중도 2023년 16.3%에서 2024년 12.8%로 낮아졌다.

한계기업 중 부실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한계기업’ 비중도 기업 수(2023년 5.5%→2024년 7.0%) 및 신용공여액(5.8%→8.5%) 기준에서 모두 상승했다. 고위험 한계기업은 3년 연속 매출액 성장률이 0 미만인 기업이나 3년 연속 부채비율이 동종 업종의 중간값을 상회하는 기업이라고 한은은 정의했다.

한은은 “한계기업 비중이 장기간에 걸쳐 증가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한계기업의 지속성이 강화되고 있으므로, 금융기관은 고위험 한계기업 및 공급과잉 이슈 등에 크게 영향을 받는 취약 업종 한계기업에 대한 익스포저가 확대되고 있는 점 등에 유의해 기업신용 리스크를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종별로 보면 부동산(39.4%)과 숙박음식(28.8%) 등 특정 산업의 한계기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지방 부동산 경기 악화와 내수 부진으로 인한 현상으로 풀이됐다.

한은은 “2024년 중 전반적인 기업실적 개선에도 한계기업의 비중이 상승한 점 등에 비춰 최근의 한계기업 증가는 경기 요인뿐 아니라 구조적 요인 등에도 기인하는 바가 큰 것”이라며 “부동산 등 기존의 한계기업 과다 업종에 대해 구조조정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지난해 18.0%를 기록해 전년 대비 0.6%포인트 상승했다. 대기업도 1.2%포인트 늘어난 13.7%를 나타냈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기업 대출을 강화하려 하고 있지만, 한계기업의 비중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상태인 셈이다. 홍태화·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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