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가라앉는다.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특파원 리포트]

중앙아메리카의 대서양 쪽, 멕시코만 아래 쿠바와 남아메리카에 둘러싸인 바다가 카리브해입니다. 연중 열대 기후이고, 바다가 맑아 휴양지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 일대에 흩어진 섬엔 원주민들도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파나마의 산블라스 지역에 사는 구나족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구나족은 수백 년 전 콜롬비아 보고타 인근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점령과 전염병, 다른 부족을 피해 사는 곳을 점점 옮겨왔고, 200여 년 전부터는 산블라스 지역의 섬으로 이동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어업과 관광업이 주 생계 수단입니다.
■ 비만 많이 와도 발목까지 물이 차올라
그런데 이들이 다시 육지로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구나족이 사는 섬 가운데 비교적 큰 섬인 가르디 수그두브는 해마다 만조 때 바다 높이가 상승하는 12월에서 이듬해 2월 사이가 되면 섬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바닷물이 차오릅니다. 그리고 비가 많이 오면 발목을 걷고 다녀야 할 정도가 됩니다.
취재진이 찾기 전날에도 비가 많이 왔는데, 바지를 걷고 걸었다는 게 구나족 아우구스토 월터 씨의 증언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섬의 높이가 낮아서입니다. 원래 산호초 주변에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섬인데, 여기에 시멘트 등을 덧붙여 섬을 넓혀왔습니다. 그래서 섬의 해발 고도가 50cm에서 1m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해수면 상승에 취약합니다. 더구나 빨라지고 있는 해수면 상승 속도를 감안하면 섬이 물 속에 잠기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 육지에서의 삶 좋다. 하지만....
그래서 결정한 게 육지로 집단이주를 하는 겁니다. 파나마 정부가 1천 2백만 달러를 들여 새 마을을 지어줬습니다. 넓은 길에 같은 모양의 집 3백여 채가 자리 잡은 '이스베랼라'입니다.
일단 환경은 좋아졌습니다. 종종 끊기긴 하지만 전기도 마음껏 쓸 수 있고, 하루 다섯 시간이지만 수돗물도 나옵니다. 섬에 살 땐 빗물을 받아 쓰거나, 물통을 배에 싣고 육지로 나와 강가에 가서 물을 길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나절이 더 걸렸습니다.

생활 공간도 넓혀졌습니다. 섬에선 다닥다닥 붙은 집에서 최대 4대가 함께 살기도 했는데, 이젠 소가족 단위로 집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넓은 공간에서 뛰어놀 수도 있게 됐습니다. 뒷마당엔 채소와 과일나무를 심을 수도 있게 됐습니다.
빅토리아 나바로/이스베랼라 주민
섬에서는 (좁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요. (육지에 있는) 밭에 가서 씨를 뿌려야 했죠. 이제 여기서는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심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다 만족스러운 건 아닙니다. 2백 년 넘게 살던 섬에서 나와 1년 만에 적응하는 게 어렵기도 하겠지만, 이들의 실제 생활과 거리가 있는 육지 환경도 있습니다.
먼저 이들이 사는 곳은 덥고 습합니다. 그래서 섬에선 집을 수숫대나 판자 등으로 바람이 통하기 쉽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지어진 집은 패널로 지어졌고, 창문과 출입구를 빼면 사방이 막혔습니다. 이들에겐 답답할 뿐입니다.

그래서 뒷마당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생활하기도 합니다. 또 섬에서와 마찬가지로 침대보다 시원한 해먹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생계는 더 문제입니다. 가르디 수그두브는 이 일대 상업의 중요 중심지였습니다. 식당도 있고, 상점도 있습니다. 섬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사람들은 매일 섬으로 출퇴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어업이 주 생계 수단인데, 바다에서 떨어진 육지에선 당연히 물고기 잡이가 어렵습니다.
헤랄도 알발라도/어부
여기에서는 바다에 낚시하러 가면 많이 잡는데 거기(이스베랼라)에서는 못 잡아요. 여기에선 200마리 정도 잡아서 가족들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어요.
■ "전문가인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
그래서 가르디 수그두브의 주민 100여 명은 여전히 섬에 살고 있습니다. 떠난 가족이 그리울 때도 많지만 태어나서 자란 곳을 버리긴 쉽지 않습니다. 인근 약 40개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떠나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고 싶든, 싶지 않든, 섬에서 살 수 있는 날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연구자의 의견입니다. 현재로선 이번 세기말까지 해수면이 80cm가량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섬이 물 아래로 잠기게 됩니다.
더 무서운 건 빨라지는 해수면 상승 속도입니다. 연평균 해수면 상승 속도는 1960년대 1.5mm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부터 2019년까지는 3.25mm로 빨라졌습니다. 여기에서 2004년부터 2019년까지를 따로 보면 6.15mm가 됩니다. 섬들이 물에 잠기는 때가 더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스티브 페이튼/스미스소니언 열대 연구소 박사
수십 년간 기후변화를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무서운 점은 10년 전만 해도 극단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속도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가 될 거라고 예상한 모델은 극히 일부였습니다.
살던 곳이 떠나기 싫다는 구나족 사람들도 해수면 상승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겁니다. 떠나기로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지원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고, 육지에서의 적응도 어려울 겁니다. 기후 변화는 이들에겐 현실입니다.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박일중 기자 (baikal@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이 대통령, 한국 정상 최초 안보리 토의 주재…“AI 도전에 새로운 거버넌스 모색해야”
- [단독] ‘샤넬 직원 2명’ 등 76명 부른다…특검 ‘금품수수’ 혐의 입증 총력
- [단독] ‘가짜뉴스’라더니…‘김건희 트위터 인증’에 문체부까지 동원
- “정부기관도 털렸는데 조사했나?” 해킹청문회서 나온 ‘경고’ [이런뉴스]
- UN 에스컬레이터 고의 멈춤? “미 비밀경호국, 조사 착수” [지금뉴스]
- 챗GPT 추천 번호로 ‘2억 원 당첨’ 美 여성…“전액 기부” [잇슈 SNS]
- 멸종위기 표범상어 ‘집단 짝짓기’…야생서 최초 포착 [잇슈 SNS]
- 추석 택배 쌓인 의원회관…담당 알바까지 고용
- ‘억대 예식비 전액’ 보상에도…국가행사 내용은 함구? [잇슈 키워드]
- “앞만 제대로 봤으면”…싱크홀 피해자에게 책임 물은 경찰 [잇슈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