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꿈틀댄다, 편견이 깨졌다
50여년 실험·정립한 리버스펙티브 회화
사각뿔대 나무덩이 툭 불거진 화면으로
가까운 곳이 가장 멀어보이는 역원근법
보는 이의 움직임과 반대로 움직이기도
'그림은 멈춘 장면'이란 편견 깨뜨리며
감상 너머 인식, 평생 고민한 결과물로


감탄 반 탄식 반.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리 고해상도로 뽑아낸 그림파일이라도 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그저 사진 이미지만 믿고 ‘세밀하게 묘사한 잘 그린 그림’이려니 방심한 채 전시장에 들어섰다간 발걸음 떼는 내내 당혹감에서 헤어나올 방법이 없는 거다.
물론 세상의 모든 미술작품이란 게 그렇긴 하다. 눈앞에서 직접 실체를 접한 것과 접하지 않은 차이를 어찌 말로 설명하겠나. 그러니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아는 그림’이라고 해도 그 원작 한번 보겠다고 미술관으로 갤러리로 기어이 달려가고 날아가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경우는 말이다. 그 보편적인 ‘원작론’을 한 단계 넘어선다. 설사 소문으로 듣고 이미지로 확인한 ‘아는 그림’이라 해도 실제로 보지 않고선 절대 “이 작품을 안다”고 할 수 없단 얘기다.
도대체 뭐가 어떻길래. 시작의 수순대로 “평면이 아닌” 형태와 마주치게 되는 게 먼저다. 벽에 걸린 납작한 캔버스 작품이 아니란 뜻이다. 사각뿔대(사다리꼴) 모양의 두툼한 나무덩이가 툭툭 불거져 있는 입체형 보드가 기본 윤곽. 보드의 평평한 바닥은 물론 튀어나온 사각뿔대의 다섯 면까지 빼곡하게 그림이 들어차 있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독창적 시각 실험’이란 평가
‘그림은 멈춰있는 장면’이란 편견을 낱낱이 깨부수고 있는 현장은 영국작가 패트릭 휴즈(86)의 개인전이다. 서울 용산구 소월로 박여숙화랑에서 펼친 전시에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영국 런던에서 한국 서울로 실려 보낸 ‘살아 꿈틀대는 그림’ 23점이 걸렸다. 이번 개인전이 작가의 첫 서울전은 아니다. 횟수로 세 번째고 햇수로는 15년 만이다. 그 인연을 함께해온 박여숙화랑은 이번 개인전을 계기로 작가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전시작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유화’다. 사각뿔대가 튀어나와 있는 나무보드 전체에 직접 그림을 그려 제작한 연작이다(‘그림자’ Shadows 2024, ‘케이지를 열어라’ Open the Cage 2009, ‘구겐하임의 안과 밖’ In and Out of the Guggenheim 2007 등).
다른 하나는 ‘멀티플’.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을 디지털 방식으로 복제·인쇄해 잘라낸 뒤 부분부분 콜라주하고 나머지 빈공간은 유화로 완성했다(‘비바 베네치아 3’ Viva Venezia 3 2025, ‘가장한 팔라조’ Pretend Palazzo 2025, ‘갤러리’ Gallery 2024, ‘마그리트’ Magritte 2024 등).

세 갈래의 전시작은 세부기법보다 작품가에서 훨씬 차이가 크다. ‘유화’ 작품의 가격대는 1억∼4억원대에 이르지만 ‘멀티플’ 작품은 1000만∼2000만원대, ‘콜라주’ 작품은 300만∼500만원대로 형성돼 있다니까. 이를 두고 화랑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구분해 시장을 내다본 휴즈의 영리한 전략”이라고 귀띔한다.
작품명에서 슬쩍 비치듯이 휴즈가 즐겨 다룬 소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풍경, 미술관 전경, 책·그림·화구가 쌓이고 걸린 스튜디오 등이다. 폭 250㎝를 넘기는 대작부터 50㎝ 안팎까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다채로운 버전으로 제작하고 있다.


그저 회화가 달리 보이는 흥미로운 세계를 제공하자는 의도만은 아니었을 거다. 휴즈가 반백년에 걸쳐 리버스펙티브 회화에 몰입한 이유가 말이다. 그중 하나는 “어떻게 세계를 보고, 또 어떻게 그것을 믿는가”라는, ‘감상 너머 인식’에 관한 고민이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의 앞면인지 뒷면인지, 오랜 시간 스스로 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그 대답을 찾아가려 했다는 얘기다.
지난한 그 과정 덕에 휴즈의 작품은 예술과 철학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나 보다. “역원근법의 마법은 내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예술을 창조했다는 것”이라고, “그 예술은 개인이 아닌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공용어이며 현실보다 더 낯선 세계를 드러내는 통로”라고 했다. 전시는 30일까지.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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