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복싱에 빠진 MZ세대

박준영 2025. 9. 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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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 끼고 잽잽, 나와의 싸움 꿀잼

링 위의 주먹 대결서
생활형 운동으로 변화

건강·자기방어 등 이유
여성·청소년 참여 늘어

TV 복싱 예능 잇따라
유튜브·SNS서도 열풍


복싱이 다시 돌아왔다. 예전처럼 링 위에서만 치고받는 스포츠가 아니다. 이제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을 챙기며, 자기방어까지 겸하는 ‘생활형 운동’으로 변신했다. 샌드백을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와 땀방울은 더 이상 선수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직장인, 대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글러브를 낀다.

TV 예능도 복싱 인기에 불을 지폈다. 최근 방영된 ‘무쇠소녀단’은 복싱을 전면에 내세워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배우 마동석이 중심이 된 복싱 예능도 곧 선보인다. 화면 속에서 유명인들이 땀을 흘리며 주먹을 날리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린다. 유튜브와 SNS에서는 ‘복싱 다이어트 브이로그’, ‘복싱 챌린지’ 영상이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박정언(오른쪽) 관장과 윤희나씨가 미트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박정언(오른쪽) 관장과 윤희나씨가 미트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복싱은 오래전부터 대중문화 속에서 강렬한 상징을 지닌 스포츠였다. 영화 ‘록키’에서 주인공은 수없이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섰다. “진짜 중요한 건 몇 번을 맞느냐가 아니라, 맞고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라는 메시지는 세대를 관통하는 울림이 됐다. 그 정신은 지금 체육관 안에서 직장인과 대학생들의 땀 속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창원 상남동에서 복싱장을 운영하는 박정언 관장(33)은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 “예전에는 선수 육성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일반인 회원이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특히 직장인 회원이 크게 늘었고, 여성 회원도 다이어트와 자기방어를 위해 많이 찾아옵니다.”
박정언(오른쪽) 관장과 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박정언(오른쪽) 관장과 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박정언 관장과 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박정언 관장과 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그는 복싱의 인기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샌드백에 쏟아붓는 직장인들이 많아요. 단순히 체력 단련이 아니라 정신적인 해방감을 찾으러 오는 거죠. 게다가 예능이나 영화에서 복싱이 계속 나오다 보니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입소문까지 더해져 꾸준히 새로운 회원이 늘고 있습니다.”

박 관장은 “요즘은 초등학생부터 학부모들이 먼저 등록을 시키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이나 안전 문제 때문에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운동으로 복싱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무섭다’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제는 재미있고 친근한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복싱장은 저녁마다 활기가 넘친다. 글러브가 샌드백을 때리는 둔탁한 소리, 땀에 젖은 회원들의 호흡, 링 위에서 오가는 잽과 훅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한쪽에서는 초등학생들이 구령에 맞춰 스텝을 밟고, 다른 쪽에서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 묵은 피로를 털어내듯 스파링에 몰입한다. 대학생들은 친구와 함께 웃으며 기술을 익히고, 자연스럽게 친분도 쌓는다. 박 관장은 “처음 오는 사람도 재미있게 오래 다닐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싱장 관원들이 샌드백을 치고 있다.

복싱장 관원들이 샌드백을 치고 있다.

복싱을 5년째 이어오고 있는 김동하(33)씨는 어릴 때 만화 ‘더 파이팅’을 보고 복싱을 해보고 싶었다. 주인공이 따돌림을 극복하며 챔피언을 꿈꾸는 모습에 매료됐다”며 시작 계기를 밝혔다. 그는 “복싱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건 자신감”이라며 “예전에는 다혈질로 싸우기도 했지만, 이제는 여유 있게 대처하는 법을 배웠고, 인내심도 길러졌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복싱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묶여 있던 일상에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또 “스파링을 통해 배운 기술을 실제로 활용하고 부족한 점을 확인하며 성장하는 즐거움을 느낀다”며 “한 동작 한 동작이 정해진 선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그 선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이 예술 같다”고 강조했다.
복싱장 관원들이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

복싱장 관원들이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

창원시체육회에서 근무 중인 윤희나(31)씨는 원래 헬스를 오래 했지만, 권태감을 느껴 새로운 운동을 찾았다.

그는 “격하게 움직이면서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복싱이 매력적이었다”며 “처음 주먹질을 배웠을 때는 신기하고 통쾌했다. 운동이 끝나면 성취감이 남는다”고 말했다. 불과 4개월 만에 체력 변화도 확연했다. “웨이트는 6년을 해도 체력 상승이 뚜렷하지 않았는데 복싱은 금세 달라졌다. 따로 유산소를 하지 않아도 체중 감량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윤 씨는 “복싱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직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며 “나중에는 시합에도 나가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링에 걸려 있는 헤드기어와 글러브.

링에 걸려 있는 헤드기어와 글러브.

회원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매력은 “복싱은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점이다. 라운드마다 체력이 바닥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면서 자신감을 얻는다. 작은 성취가 일상에서도 원동력이 되고 땀방울이 곧 스트레스를 이기는 힘이 된다. 누군가는 복싱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고, 또 누군가는 삶에 활기를 얻는다. 단순한 운동을 넘어 복싱은 이제 생활 속 치유이자 성장의 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복싱의 부활은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다. 1970~8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한국 복싱은 이후 긴 침체기를 겪었으나, 최근 생활체육으로 다시 살아났다. 선수 중심 종목에서 일반인 참여형 스포츠로 변모하면서 저변이 넓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링 위의 혈투’로만 기억됐지만, 이제는 ‘건강과 자기관리의 도구’로 재해석되고 있다.
최근 복싱의 트렌드는 여성과 청소년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 복싱의 트렌드는 여성과 청소년의 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이 주축이 되고, 여성과 청소년의 참여가 확대되는 점은 과거와 다른 흐름이다. 직장인의 퇴근길, 대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학부모가 자녀를 데려오는 풍경까지 복싱은 이제 일상의 풍경이 됐다. 박 관장은 “복싱은 혼자 하는 운동 같지만, 사실은 서로 응원하고 경쟁하며 함께 성장하는 운동”이라고 했다. 체육관 안에서 맺어진 유대감이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복싱 열풍은 결국 ‘자기 관리’와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단련하는 스포츠로서 복싱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글·사진= 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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