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날, 시험장 대신 일터로 가는 고3도 있다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이 뭐예요?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예요?”
9월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3학년 2학기〉 상영이 끝난 뒤 교복 차림의 한 관객이 극장을 나서며 말했다. 동아리 활동으로 함께 영화를 보러 온 다른 학생도 맞장구를 쳤다. 인솔 교사가 그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9월9일 〈시사IN〉 편집국에서 만난 이란희 감독에게 이 말을 전하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말이 나올까 봐 걱정했는데 그 말이 나오는군요.”
9월3일 개봉한 영화 〈3학년 2학기〉는 특성화고 3학년 창우와 그 친구들 이야기다. 규모는 작지만 잘만 하면 기업 추천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창우는 하게 될 일이 뭔지도 모르면서 한 중소기업에 면접을 보러 간다. 그 자리에서 회사 담당자는 창우를 보자마자 말한다. “합격.” 그렇게 학창 시절의 마지막 학기를 낯선 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보내게 된다. 함께 일을 시작했지만 금세 싫증을 느끼는 친구 우재와 이미 회사에서 에이스로 인정받는 동갑내기 성민, 빠릿빠릿한 다혜 사이에서 창우는 ‘폐급은 아니지만 느리다’는 평가를 받으며 묵묵히 하루를 보낸다.
이란희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장기 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첫 장편영화 〈휴가〉(2021)에도 특성화고 학생이 잠깐 등장한다. 개봉 당시 현장실습생이던 고 김동준 군의 어머니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14년, 김군은 장시간 노동과 선임의 폭력에 시달리다 기숙사 옥상에서 투신했다. “당시 어머니가 ‘아이를 인문계에 보낼걸 괜히 실업계에 보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런 접근을 할 건 아닌데 자식의 죽음을 두고 지난 선택을 되짚다 보니 그러셨던 것 같다.” 이전부터 연소 노동자(만 18세 이하 노동자)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결심은 그때 섰다. 능력주의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던 시기이기도 했다. 과거 극단에 있을 때도 수은중독으로 17세에 사망한 문송면 사건을 연극으로 만들려 한 적이 있다.
2년 동안 취재를 했다. 특성화고 재학생과 학교를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거나 대학에 진학한 졸업생, 교사, 교육청 관계자, 용접공을 인터뷰했다. 취재 초기에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미지가 ‘영정 사진 속 청소년’에 가까웠다. 그만큼 현장실습 중 사망한 학생의 소식이 많이 들렸다. 실제로 만나 보니 ‘희생자’보다는 훨씬 다양한 캐릭터를 갖고 있었다. 학생들을 만나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아직 애구나’였다. 아이들이 일터에서 죽는 데 대한 슬픔과 분노에서 작업을 시작했지만 자꾸만 “얘네가 아이구나” 깨닫게 됐다.
“저를 좋게 봐줄까요?”
죽음에 이른 현장실습생에 대한 이야기는 다뤄졌지만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학생들이 어떤 곳에 취업하고 어떻게 적응해나가고 비전을 만들어가는지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영화에는 어디서나 볼 법한 10대가 등장한다. ‘농땡이’를 피우는 현장실습생도 있고 어른들 시선에서 봤을 때 좀 약은 학생도 있다. 울분이 쌓여 있는 소년 성민과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순하디순한 ‘초식남’ 창우까지 다양하다. 회사와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 바로 그만두고 아버지 편의점에서 일할 수 있는 우재와 달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랑 동생 둘과 살아가는 창우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딱히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딱하지만 불쌍하지 않게 연기를 해달라고 주문했다는 감독의 의도대로다. 그렇게 영화는 청춘 드라마 재질에 가까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외면할 순 없었다. 창우와 아이들의 일터에도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일의 효율을 위해 2층 안전 바를 없애 추락 위험을 안고 있는 작업장, 그라인더를 사용할 때 날을 튕겨낼 수 있는 가죽 치마와 팔 토시를 구입해달라는 선임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 회사 측이 그렇다. 기계가 돌아갈 때마다 소음의 크기만큼 관객의 마음도 조마조마해진다. 주인공에게 큰 사고가 일어나면 영화가 오로지 그걸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될 것 같았다. 비극이 너무 크면 자기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현장실습생을 넘어 청년 노동자에게 눈을 돌렸다.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를 떠올렸다.
“저를 좋게 봐줄까요?” 현장실습에 나가기 전, 교사의 격려에도 창우는 이렇게 묻는다. 이란희 감독이 좋아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창우의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말이다. 창우는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 쓴다. 또 같이 회사에 들어간 친구 우재에게 말한다. “이거 아니면 뭐 할 건데?” 극 중 다른 친구들에게는 ‘공장 밖’이라는 선택지가 있지만 창우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만 가늠하는 편이다. 이 감독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창우 같은 사람을 길러내기 쉽다고 생각했다. 좀 더 많은 사람을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창우 역을 맡은 유이하 배우는 실제로 현장실습 경험이 있었다. 제빵 관련 현장으로 실습을 갔는데 처음에는 판매를 맡았다. 출근 첫날, 매대에서 빵을 파는데 계산대 밑에 시식용 빵처럼 빵 조각을 잘라놓은 무더기가 있었다. 이란희 감독은 “학생들이 그걸 조금씩 집어 먹기도 하는 모양인데 점심시간이 되니 사장이 와서 ‘밥 먹을래, 빵 먹을래?’ 물었다. 유이하 배우가 자기도 모르게 ‘저 그냥 이거 먹으면 돼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게 바로 학생이 일터에 갔을 때 취할 수밖에 없는 태도인 것 같다. 밥을 먹겠다고 해도 되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말했다.
영화에는 학생뿐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애쓰는 사람들이 나온다. 학생들을 다그치거나 어르는 업체의 선임들도 실은 비슷하게 최저임금 언저리를 맴도는 처지이고 실습생에 대한 호의와 적대감 모두 얄팍하다. 교사 역시 학생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려 하지만 실습 나간 곳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느냐는 질문에, 이번이 처음이라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선악이 뚜렷하지 않은 건 현실인 동시에 취재의 결과였다. “나쁜 위치에 있는 사람인 듯한데 얘기를 들어보면 한구석 진심이 있기도 하고,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데 듣다 보면 아닌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노동 소재 영화를 만드는 이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회사의 점심시간, TV에서 수능 뉴스가 흘러나온다. 이 감독은 수능 날에도 일하는 청소년이 있다는 걸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낼지 궁리했다. 예전에 감독의 지인이 SNS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고등학생일 때 공단에서 실습을 하는데, 수능 날 라디오에서 계속 관련 뉴스가 나와 그때부터 매해 수능 날이 되면 우울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전부 결정될 것처럼 떠들썩한 날 어떤 ‘고3’은 시험장 대신 일터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상기시킨다.

〈3학년 2학기〉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여럿 받았다. 평단의 반응에 비해 관객 수가 아쉽다. “딸한테 한번 물어봤다. 평이 좋은데 관객이 안 들어서 왜 그런 것 같냐고 했더니 ‘노동이니까 안 보지’ 답하더라.” 그럼에도 계속해서 노동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뭘까. 당연한 말 같지만 흥행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게 된 어떤 사람들의 얘기를 영화로 만든다. 하필이면 돈이 안 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거다.”
이번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기까지 고비가 두 번 있었다. 시나리오를 탈고하고 프리프로덕션(촬영 준비 단계)에 들어갔을 당시 투자자와 미팅을 하며 줄거리를 설명할 때 스스로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촬영 한 달 전까지도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신인에 가까운 배우들과 함께하는 작업은 굉장히 즐거웠다. 또 우여곡절 끝에 자체 배급을 하게 되어 일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를 본 관객의 리뷰 중 젊은 남성들의 이미지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N번방이나 묻지마 살인, 여성혐오 범죄. 이런 것들이 10대 후반, 20대 초중반 남성들에게 씌워진 이미지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들은 그 또래지만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각종 콘텐츠에서 이 계층을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하기 위한 캐릭터로 써온 것 같다. 그들의 다른 면을 본 것 같다는 리뷰가 반가웠다.” 지지난 대선 당시 ‘이대남’ 얘기가 나왔을 때도 블루칼라 남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빠져 있었다. “이들을 다독이는 게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 정치권이든 어디든 계속해서 대졸자를 디폴트값으로 놓고 세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창우와 친구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던 교복 차림의 학생들에게 감독으로서 할 말은 없을까. 성인이라면 그게 아니니 다시 생각해보라 하겠지만 학생들인 만큼 좀 더 명확히 얘기해주겠다고 했다. “공부를 못하든 잘하든, 재능이 있든 없든 스스로의 독립을 위해 혹은 가정에 보탬이 되려 일을 하며 산다는 건 아주 가치 있는 일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나는 고작 이런 일밖에 못하는 사람이야’ 식의 자기부정을 하지 말아달라는 게 주제 의식이다. 지금 공부를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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