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쉬려 동료와 다투기까지"···휴일 노동 만연한 서비스업 노동자들의 고충
가족·친구 함께하는 사회적 휴식 불가능
이틀 연속 휴무 쉽지 않아…재충전 부족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일 지정 요구
연속휴무 위한 대체인력 지원 아이디어도

"주말에도 아이들을 떼어놓고 일하러 나오는 것이 가장 힘들죠. 가족, 친구들과 온전히 주말을 보낼 수는 없는 걸까요?"
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 A씨
2004년 주5일제가 처음 도입된 이후 대부분 직장은 '평일 5일 근무, 주말 2일 휴무' 체계가 자리 잡았다. 이재명 정부는 더 나아가 주4.5일제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주말도, 나아가 추석 명절 같은 연휴조차 온전히 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백화점과 마트, 웨딩업체, 호텔, 병원 등 서비스 업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다.
업종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휴일노동자'의 주말, 공휴일 노동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휴일노동자들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쉴 수 있는 휴일 휴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평일 대체휴무를 쓴다고 해도, 이틀 연속 휴식이 드물어 충분한 재충전도 어렵다. 온전한 체력 회복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선 모두가 쉴 때 함께 쉴 수 있는 사회적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이들과 함께 쉬고 싶다"는 바람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A(45)씨는 11살, 9살, 2살 세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오전 7시 30분까지 막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한다. 그사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와 둘째는 스스로 등교 준비를 해 학교로 간다. 백화점에 출근한 A씨의 하루는 바쁘다. 새로 들어온 물건을 진열하고 손님은 맞은 뒤 백화점이 문을 닫는 오후 8시까지 근무한다. 늦은 저녁 집에 들어가서야 세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다.

A씨는 "평일에 아이들 볼 시간이 적어 주말이라도 함께 놀아주고 싶은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토요일, 일요일이 총 8번 있는 9월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는 절반 정도 주말 출근을 해야 한다. 특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아이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공휴일에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다. A씨는 "주말에 일을 하는 만큼 평일에 쉴 수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진 못한다"며 "나 혼자서 쉬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모두가 쉬는 주말에 함께 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은 웨딩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결혼식이 주말에 열리다 보니 이들에게 주말은 곧 일하는 날이다. 웨딩업체에서 26년째 일하고 있다는 송모씨는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휴일노동자 증언대회에 나섰다.
그는 "예식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정작 지인들의 결혼식이 있어도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제가 참석한 결혼식은 제 결혼식과 친형제자매 결혼식 이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생인 딸과 놀이공원 한번 가보지 못했다"며 "주5일 근무를 하고는 있지만 평일 쉬는 날에는 가족과 함께할 수 없으니 저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가족행사 참석 위해 동료와 싸워야 하다니
쉴 수 있는 주말이 제한적이다 보니 동료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16살, 10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B(45)씨는 외국계 화장품 매장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달 주말 출근을 최소 6번 하고 있는데, 한 달 전부터 팀원들과 쉴 수 있는 주말을 협의해야 한다. 하지만 결혼식이 많은 3~5월이나 7~8월 휴가철은 쉬고 싶은 주말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B씨는 "가족행사나 친구 결혼식 날짜가 겹치는 경우 정말 난감하다"면서 "결혼을 했거나 자녀가 있는 직원들은 명절이나 크리스마스처럼 의미 있는 날에 서로 쉬고 싶어 하니 갈등이나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동료와 다툼이 있고 나면 '왜 우리는 남들 다 쉬는 날 일을 하느라 날을 세워야 하나'라는 답답함이 밀려온다고도 했다.

휴무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B씨를 비롯한 휴일노동자들은 주말에 일하는 대신 평일에 대체휴무를 적용받는다. 하지만 B씨는 "대체휴무를 사용해도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어서 쉬는 직장인들처럼 이틀 연속 쉬는 날은 드물다"며 "특히 매장이 바쁜 주말을 껴서 연속으로 쉬는 경우는 없다"고 전했다. 이어 "일을 하기 위해선 충분한 휴식도 중요하다"며 "주말에 출근하는 노동자들도 다른 직장인들처럼 이틀 연속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일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도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서비스노동자 주말노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서비스직군 노동자들은 평균 5.57회 주말 출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 중 평일을 포함해 이틀 연속 휴일을 보장받는 노동자는 △0회 7.35% △1회 36.16% △2회 37.01% △3회 8.71% △4회 10.69%로 대부분 노동자들은 연달아 쉬지 못하는 퐁당 휴식을 하고 있었다. 평일 중 혼자 휴식하는 날이 많다 보니 휴무일 활동도 TV, 넷플릭스, 유튜브 시청이 53.18%로 조사된 반면 사교활동은 절반 수준인 27.53%로 나타났다.

주말, 공휴일에는 상점 문 닫는 독일
휴일노동자들의 주말휴식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한국에서만 터져 나온 것은 아니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선 이미 10여 년 전부터 사회적 화두였다. 2011년 6월 독일노조연맹(DGB)은 시민사회와 함께 '일요일은 일요일이어야 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문은 "일요일은 사람들이 사회적, 종교적, 스포츠, 정치적, 문화적 삶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우리 사회와 가족의 결속을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일요일과 공휴일 보호는 끊임없이 잠식당하고 있다"며 "제조업, 무역, 은행, 보험 및 여러 서비스 업종에서 일요일 노동이 꾸준히 확대됐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일요일을 누릴 수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해 일요일을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원칙적으로 상점 문을 열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말과 공휴일 휴식권을 잠식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면서 노동계와 갈등을 겪고 있다.
'주말 노동' 제어 방안 고민할 때

휴일노동자들은 △모두가 쉬는 주말에 함께 쉴 수 있는 권리(사회적 휴식권) △재충전을 위한 연속 휴식권을 요구하고 있다. 휴일근무는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영역과 의료·웨딩산업 등 필수불가결한 영역으로 나뉘어 있어 대책 마련에 있어서도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이익 극대화에 동원되는 서비스 직종은 '주말 의무휴업일' 제도를 요구했다. 유통산업발전법상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사회적 휴식이 가능한 주말로 강제하자는 것. 이와 함께 추석, 설날 등 명절 당일에는 의무휴업일과 별도로 매장 문을 닫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회에는 이미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현행법상 의무휴업 업종이 아닌 백화점과 면세점을 의무휴업 대상으로 넣고 추석과 설날, 매달 둘째 넷째 일요일을 반드시 의무휴업일로 지정토록 했다.
정하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노동자에게 주말이나 공휴일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온전한 휴식을 빼앗는 것"이라며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온전한 주말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휴일노동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며 "휴일노동 업종이 서비스직군부터 의료, 돌봄까지 갈수록 늘어나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수불가결한 부분은 정부가 '주말 인력' 충원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서 육아휴직자 대체인력 채용 시 지원금을 보조하는 것처럼,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휴일노동자 대체인력을 채용할 경우 지원금을 보조하자는 아이디어다. 제도가 도입되면 업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주말에 영업을 해야 하는 예식업 종사자 등도 주말 휴식이나 주말을 낀 연속휴무가 가능할 수 있다. 다만 이 정책은 재정 부담과 업종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휴일노동자들에게 충분한 휴식권을 보장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근로기준법과 유통산업발전법 등 여러 법안이 상호보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휴일노동자 대체 인력을 지원하는 정책은 업종이나 회사 규모를 어떻게 설정하냐에 따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며 "반드시 노사정 논의를 통한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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