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제 시동 건 정부, 연내 로드맵 발표
노동시간 단축 지원법도 연내 제정

이재명 정부의 국정 과제인 ‘주 4.5일제’의 밑그림을 그리는 노사정 협의체 논의가 시작됐다. 고용노동부는 24일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을 출범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참여하는 추진단은 3개월간 논의해 주 4.5일제 추진 세부안 등을 담은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우리나라 평균 노동시간을 2030년까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고 공약했고, ‘주 4.5일제 추진’을 국정 과제로 채택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연평균 근로시간은 1859시간으로 OECD 국가의 평균(1717시간)보다 많다.
정부는 우선 주 4.5일제를 확산하는 데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4.5일제를 도입하는 업체에 재정 지원을 가능케 하는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법’을 연내에 제정할 예정이다. 내년부턴 주 4.5일제 시범 사업 등을 시행하기 위한 325억원 예산 배정도 마쳤다. 정부 내에선 예정대로 4.5일제 도입 분위기가 확산되면 2028년쯤엔 법정 노동 시간 자체를 줄이는 법 개정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다만, 노동계는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를 요구하고 있어 이와 관련한 사회적 논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노동계가 ‘공짜 노동’ 시간을 늘린다고 지적해 온 ‘포괄임금제’ 역시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사전에 일정액으로 정하는 임금 제도다. 정부는 실제 근무시간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식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한편, 금융노조는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 4.5일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26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금융노조는 “장시간 노동은 저출생과 지방 소멸을 가속하는 주요 원인”이라며 “금융권이 선제적으로 주 4.5일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노동시간 OECD 평균으로” 재계 “임금 삭감 없인 불가능”
정부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의 평균 노동시간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4.5일제가 확산돼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연차 휴가 소진율을 높이거나 육아휴직을 제대로 사용하도록 하는 등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안도 추진되지만,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나타날 기업의 생산성 저하와 근로자의 임금 삭감이다. 노동계는 임금 삭감 없는 4.5일제를 주장하지만, 경영계에선 노동 생산성이 줄어드는 데 급여만 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생명 안전 업무부터 4.5일제 시범 사업
정부는 내년 시범 사업을 통해 주 4.5일제 확산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과로사·산재 고위험 등이 높은 생명·안전 관련 업무 등에 4.5일제를 시범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소방, 의료, 재난 대응 관련 업무가 우선 도입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 같은 방침은 정부의 또 다른 핵심 국정 과제인 ‘산재와의 전쟁’과도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장시간의 야근 등이 산재와 연관돼 있고,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면 산재를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4.5일제 도입 업체에 대한 재정 지원을 위해 연내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법’을 만들 예정이다.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에 보조금, 세액공제 등 혜택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노사 합의로 주 4.5일제를 도입·운영한 업체에 대해선 근로자 1인당 6개월간 20만~6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도입 후 채용이 증가한 기업에 대해선 추가 채용 인원당 60만~80만원을 지급하는 안도 거론된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예산 325억원을 이미 배정한 상태다. 이 외에 4.5일제 도입 지원을 위한 특화 컨설팅, 육아기 근로자의 ‘10시 출근제’ 등도 함께 추진해 근로시간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기업들 “생산성 하락 뻔한데”
산업계에선 제조업 중심인 우리나라 산업 구조에서 4.5일제 도입은 기업의 생산성 하락과 직결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미국 관세 협상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생산 단가가 오르고 있어 심각한 경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4.4달러로 OECD 평균인 56.5달러의 80%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77.9달러, 독일 68.1달러, 프랑스 65.8달러, 영국 60.1달러, 일본 49.1달러 등 대부분의 주요국보다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2018년 이후 국내 업체 임금은 연평균 4% 오르는 데 반해, 노동생산성은 1.7% 올랐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대한상의 측은 “인건비 상승이 노동생산성을 웃돌 경우, 임금 상승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렵고 연구·개발 투자 여력도 부족한 중소·중견 기업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고 했다.
업계에선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대해선 오히려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 등 근로 유연화 제도를 고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핵심 개발 인력의 경우 대체가 힘들기 때문에 단순히 인력을 더 투입하는 식으로는 개발 진도를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근로자의 급여 감소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노동계에선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노동생산성이 저하되면 이익도 줄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급여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줄어드는 시간만큼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기존 임금까지 유지시켜 줘야 한다면 이는 이중고”라며 “현재 논의되는 4.5일제 추진은 부담을 모두 기업에 전가시키는 구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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