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말뿐, 전쟁 못 끝내” 유엔 무용론 불지핀 트럼프

“유엔이 하는 일은 강력한 어조의 편지를 쓰고 절대 이행하지 않는 것뿐이다. 공허한 말(empty words)은 전쟁을 해결하지 못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 연설에서 “유엔은 무능하고 말뿐인 기구”라며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이날 약 56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유엔을 비판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각국 정상이 모인 총회장에서 5년 만에 연단에 오른 트럼프가 작심하고 유엔을 공격한 것이다.
국제 평화 및 안전 유지를 위해 1945년 창설된 유엔은 올해 8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현재 유엔의 핵심 축인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거부권을 방패 삼아 유엔의 제재 없이 ‘무력에 의한 영토 확장’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앞장서 유엔의 권위를 깎아내리면서 ‘유엔 무용론’을 재점화시킨 것이다.
트럼프는 연설 초반 “나는 취임 7개월 만에 전 세계 전쟁 7개를 종식시켰다”고 했다. 그가 말한 전쟁 7개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캄보디아와 태국, 이스라엘과 이란, 인도와 파키스탄,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세르비아와 코소보 전쟁이다. 트럼프는 “유엔이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한 것이 안타깝다”면서 “나는 이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을 직접 상대했지만 유엔으로부터 협상을 마무리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전화 한 통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1월 이후 처음으로 이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을 만날 정도로 유엔과 거리를 뒀다.
그는 이어 “유엔에서 받은 것이라고는 중간에서 멈춘 에스컬레이터뿐”이라면서 “그리고 프롬프터(자막기)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날 트럼프가 연단에 오르기 전 그와 배우자 멜라니아 여사가 탑승한 에스컬레이터가 작동을 중단해 두 사람이 걸어 올라가는 ‘의전 사고’가 발생했다. 또 연설 시작부터 프롬프터가 고장 나 종이 원고를 읽어야 했다. 트럼프가 유엔의 무능력함을 농담조로 비꼬자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지만, 유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큰일 났다”는 반응이 나왔다. 트럼프는 유엔이 주도해 온 ‘기후변화 위기론’에 대해서도 “세계 최대 사기극(scam)”이라며 통째로 부정했다. 트럼프는 “한 유엔 관리가 1989년에 ’10년 안에 지구온난화로 전체 국가들이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트럼프가 유엔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1기 행정부 때부터 미국이 유엔에 내는 분담금을 대폭 삭감하거나 납부를 지연시켰다. 2기 행정부 들어서도 평화유지군(PKO)과 인도적 지원과 관련된 예산을 철회하거나 삭감하는 방식으로 유엔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의 연설로 다시 들끓는 유엔 무용론의 주요 원인으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전혀 없는 시스템의 한계가 꼽힌다. 국제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안보리 결의가 통과되기 위해서는 상임이사 5국이 모두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미·러 등이 자국 이해관계에만 초점을 맞춰 거부권을 남용하면서 우크라이나·가자 전쟁 등 굵직한 글로벌 안보 이슈에서 안보리가 제대로 된 결의안을 하나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유엔은 2022년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총회에서 설명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를 채택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질적 견제는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침공처럼 상임이사국이 주체가 돼 유엔 정신을 정면으로 어겨도 속수무책인 것이다.
유엔 자체가 회원국들의 분담금으로 유지되는 ‘주인 없는 조직’이라는 점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유엔을 감시하는 조직이 없어 관료주의가 극심하고 재정적으로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것이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초 ‘유엔 80’이라는 정책을 발표하며 “유엔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상 말뿐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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