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영월 상동의 전설

박창현 2025. 9. 2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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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상동에는 국내 최고·최초·최대·최강의 전설이 내려온다. 텅스텐(중석)을 채굴한 상동광업소는 1950~60년대 국내 최대 규모의 외화벌이 전초기지였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2년 국영 대한중석에 인수될 당시 우리나라 광물 수출액이 4000만 불 수준이었는데 대한중석 자체 수출액이 3126만 불에 달했다. 이는 국내 광물 수출물량의 85%를 책임진 영월 상동과 대한중석의 지위를 짐작할 수 있는 수치다.당시 상동광업소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국토개발의 자금줄이었다. 현재 포항제철(포스코)의 탄생 배경에도 대한중석의 자금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월 상동의 명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전설은 국내 최초의 실업 축구단 창단과 아시아 축구클럽 챔피언십 출전이다. 영월 상동을 거점으로 국내 최고의 수출기업으로 성장한 대한중석은 1956년 실업축구단을 창단했다. 당시만 해도 상동광산 주변 환경이 열악해 제대로 된 운동장조차 없었다. 선수들은 훈련 외 근무시간에는 광부들과 함께 탄광에 들어갔다고 한다. 대한중석 축구단의 부흥은 김대중 정부 당시 국무총리를 역임한 고 박태준 사장이 1964년 부임하면서 급성장했다. 함흥철 등 국가대표급 선수를 대거 영입한 대한중석은 1965~66년 대통령배 전국 축구대회를 연거푸 우승하며 국내 최강팀으로 부상했다. 이어 1967년 초대 아시안클럽 챔피언십에 한국대표로 참가,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다. 올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강원FC는 강원 연고지 팀으로서는 대한중석에 이어 58년만의 도전인 셈이다.

요즘 고교 야구계에 혜성 처럼 등장한 영월 상동고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2023년 전교생 3명의 폐교 위기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공립 야구 전문학교로 탈바꿈한 상동고는 전국 각지에서 40명의 선수를 영입했다. 그리고 창단 2년 만인 지난 7월 전국대회 16강의 기적을 쓴 데 이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수 임종훈이 두산베어스에 지명되는 경사를 맞았다. 인구 1000명 남짓의 폐광지 영월 상동의 저력이 상동고 야구부로 부활을 알려 반갑다. 야구의 묘미는 9회말 2아웃부터 시작이라고 했던가. 상동의 전설은 이제 또 시작이다.

박창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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