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END 이니셔티브’, 비핵화 방안 맞나

조선일보 2025. 9. 25.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 냉전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END’는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약자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END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 공존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국제사회에 자신의 대북 정책 구상을 처음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언급한 교류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정은도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교류는 제재 해제를 수반한다. 북한이 비핵화는커녕 핵 능력을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아무 이유 없이 제재를 풀어주는 것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수십 년에 걸친 비핵화 노력을 무위로 만드는 것이다. 유엔 차원의 제재 완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한국만 앞서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제재가 해제되면 김정은이 왜 핵을 포기하겠나. 관계 정상화는 북미 수교를 목표로 한 것인데 이는 미국의 북핵 용인을 의미한다.

이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해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단계적 해법”을 제시했다. 북한의 기존 핵을 인정하고 시작하자는 것이다. 핵 보유가 사실상 인정된 상태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대통령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의 선후 관계도 문제다. 대통령실은 “세 요소 간 우선순위나 선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 대통령이 “신뢰 회복과 상호 존중이 첫걸음”이라고 한 것을 보면, 교류와 관계 정상화를 통해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는 맥락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선후 관계가 바뀐 것 아닌가. 교류와 관계 정상화는 대북 제재 해제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경우 북한은 비핵화를 할 이유가 없다.

이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접근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이 한미의 ‘비핵화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고 판단하게 되면 ‘비핵화를 위한 현실적인 접근’ 자체가 의미를 잃을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