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면] 나의 부산국제영화제 연대기

오성은 소설가·세명대 교수 2025. 9. 2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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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개막작 ‘어쩔 수가 없다’의 감독과 배우들이 입장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 올해 30회를 맞이했다./조선일보DB

부산국제영화제는 가을과 함께 온다. 아침 공기 속에서 문득 계절의 변화를 발견한 것처럼. 함께 극장에 들어가더라도 결국 개인적 체험으로 귀결되는 영화라는 신비도 꼭 가을 같기만 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고유한 정취로 이즈음에는 꼬박 내게로 온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장이지만 독대로 할 말이 있긴 하다. 고백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첫사랑을 마주한 심정이랄까. 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열렬히 사랑했다.

처음 영화제에 빠져든 건 주최 측의 전략 같은 이벤트에 의해서였다. 대학교 3학년이던 2007년,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가장 많은 영화 후기를 쓴 시민을 대상으로 ‘최다 리뷰어’를 선정했고, 포상은 오사카행 크루즈의 스위트룸 티켓이었다. 나는 학교 대신 영화관으로, 집 대신 찜질방으로 향하며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리뷰를 정리했다. 하루 4회 상영분을 꼬박 일주일 정도 보고, 앞뒤로 개막식·폐막식을 합치면 약 서른 편의 리뷰를 모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어두운 극장에서 노트에 휘갈겨 쓴 글씨를 해독하는 심정으로 영화제에 젖어 들었다. 그해의 최다 리뷰어로 선정된 나는 영화제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용돈과 학점을 영화와 바꾼 시간이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듬해부터는 시민평론단 1기로 활약하며 영화제와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이쯤 되니 한번 찍어볼까 싶어 도전한 단편영화는 부산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했으며, 관객과의 대화까지 진행했다. 그야말로 물불 가릴 것 없던 20대 중반의 나는 가을만 되면 반쯤 미친 사람처럼 영화제에 푹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 시기가 되면 부산국제영화제의 안부를 내게 물어오는 이들이 있다. 저마다 추억이 스민 영화제라는 계절이 부산 곳곳에 펼쳐졌을 터였다.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직업을 가지게 된 까닭도, 그걸 학생들과 공유하는 일도 그때의 추억과 경험이 삶의 방식으로 굳어져서일 것이다. 아침마다 남포동과 해운대의 매표소 앞에서 줄을 서던 날들, 밤이 되면 영화인들 틈에 끼어 소주를 나누던 날들, 영화가 인생의 다른 이름이라 여기며 스크린 앞에서 아파하고 기뻐하던 날들. 나는 영화제에 얼마나 많이 의지하고 기대고 빚지고 있었던가. 강력한 중력에 의해 주변 시공간이 휘어져 버리는 현상처럼 내 일상은 얼마간 끌어당겨져 버렸고, 어쩌면 그건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다.

지난날의 설렘과 현재의 고요가 이 가을에 뒤섞인 채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마주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느덧 30회에 이르는 동안, 나도 영화제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부산은 여전히 영화로 물들어 있다. 각국에서 모여든 영화인들과 시네필, 자원봉사자들과 묵묵히 영화제를 일군 사람들을 생각하면 숭고한 기분마저 든다. 저마다 영화제를 찾고 즐기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어딘가 연결된 마음이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있었을 그 마음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를 사랑하는 어떤 마음들의 축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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