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이 사라진 자리, 질문이 시작됐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6.25의 상흔을 전시로만 남기지 않고, 오늘의 우리가 직접 묻고 배우는 현재형 배움터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 갈등과 화해의 본질을 되묻는 공간이다. 전쟁의 그림자가 남긴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며, 공원은 이를 체험과 기록으로 풀어내 미래 세대에 전달한다. 오늘의 관람객이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평화를 향한 '과제'다.
◇거제에 자리한 평화교육장
거제시 계룡로61(고현동)에 자리한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가 수용됐던 현장을 보존·전시하는 역사 공간이다.
이곳에 들어선 관람객은 야외 유적과 전시관·체험관을 오가며 '보는 역사'에서 '성찰하는 역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4D(사차원)영화관, 1950 체험관, VR(가상현실) 체험관, 수어 전시 등 복합 콘텐츠가 관람 흐름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기억-체험-이해의 단계를 촘촘히 엮는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최대 17만 3000여 명에 이르는 포로가 수용됐던 현장성과 비극성을 동시에 품는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평화탐험체험관 내부 모습. 사진=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평화탐험체험관 내부 모습. 사진=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반공(공산주의에 반대함)·친공(공산주의자와 친하거나 공산주의를 추종함)으로 갈린 이념 대립에서부터 수용소 내 사건·사고, 휴전 협상과 포로 송환이라는 난제까지, 전쟁사의 굵직한 쟁점이 하나의 공간에 응축돼 있다.
공원은 이러한 사실을 기록과 전시, 체험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해 관람객에게 일상 속 평화의 가치를 일깨우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조성은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1999년 1차 유적관 개관, 2002년 2차 유적공원 개관을 거쳐 2013년 '1950관'·'평화파크'가 잇따라 문을 열며 현재의 면모를 갖췄다. 평화탐험체험관, 어린이 평화정원, 4D영화관 등으로 구성된 평화파크는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가치로 전환하는 체험·교육 동선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현장에서 관람의 깊이를 더하는 것은 해설과 체험이다. 4D영화관은 전쟁 발발과 수용소 내부 이야기를 몰입형 영상으로 전달하고, '1950 체험관'은 거울 미로·착시 미술 등 체득형 코스로 역사 맥락 접근을 돕는다. VR 체험관은 특정 장면을 증강해 이해를 보완한다. 수어 전시와 수어 해설 영상은 청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 '누구나, 함께' 누리는 공공성을 실천한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내 잔존 유적지의 모습. 사진=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유적박물관 내부 모습. 사진=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야외 유적-실내 전시-체험관 묶어 학습 효과 높여
유적공원 접근성은 교육 현장에서도 강점이다. 도심과 가까운 입지에 더해, 야외 유적-실내 전시-체험관을 한 동선에 묶어 가족·청소년 단체의 학습 효과를 높였다. 학교 수업과 연계한 현장 학습은 전쟁·인권·평화 교육의 실제 사례로 확장되고, 지역 관광 동선과의 결합은 체류 시간을 늘려 지역 상권에도 파급 효과를 낳는다.
현장 반응은 즉각적이다. 한 방문객은 "아이 눈높이에 맞춘 해설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은 "수어 영상이 있어 동행한 가족 모두가 불편함 없이 관람했다. 공공시설이 지향할 방향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는 운영 주체로서 보존-교육-접근성을 축으로 공원의 공공 가치를 체계화하고 있다. 단발성 전시에 머물지 않도록 교육 프로그램과 해설 품질을 높이고, 체험 콘텐츠의 학습 연계를 강화해 '다시 찾는 유적공원'을 지향한다.
지영배 사장은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과거의 비극을 오늘의 배움으로 바꾸는 곳"이라며 "기록과 체험, 해설과 접근성을 두루 갖춰 시민 누구나 역사와 평화를 가까이에서 마주하도록 운영의 디테일을 계속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포로생활관 내부 모습. 사진=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6.25역사관 내부 모습. 사진=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공원 운영의 원칙은 명확하다. 사실에 기초한 균형, 모두를 위한 접근성, 지역과의 상생. 유물 기증 창구와 발간·영상 아카이브를 열어 시민이 '기억의 생산자'로 참여하도록 하고, 현장 의견을 반영한 관람 동선 개선과 안전 관리로 이용자 체감 품질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운영 철학은 지역의 다른 역사·문화 자원과의 연계, 청소년·가족 단위 교육 수요 대응으로 이어지며, '크게 구하는 섬' 거제가 지닌 '평화 도시' 이미지를 더 단단하게 한다.
유적공원 관람 정보와 교육·체험 프로그램 등 자세한 사항은 공식 누리집에 수시로 공지된다. 전시·체험 콘텐츠는 현장 수요에 맞춰 업데이트되므로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주소와 찾아가는 길, 해설 예약, 교육 신청 등 상세 정보 역시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유적박물관 내부 모습. 사진=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여자포로관 내부 모습. 사진=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평화·인권·민주주의 배우는 '살아 있는 교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이제 단순한 역사 유적을 넘어섰다. 전쟁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전시하면서도 체험과 교육, 해설과 접근성으로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선 순간 관람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증언자'이자 '학습자'가 된다.
철조망과 막사,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진 갈등과 화해의 흔적은 단순히 한국전쟁의 특정 장면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되는 분쟁의 경고음이다. 이 공간을 걸어 나온 사람은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며 '전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품게 된다.
한 방문객은 "아이와 함께 찾았는데, 설명과 체험을 통해 전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평화의 소중함을 느꼈다"며 "다른 세대와 함께 꼭 와봐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원은 개인의 추억을 넘어 세대 간 대화와 공감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교두보다. 역사를 외면하지 않는 용기와 평화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공원은 오늘도 묵묵히 서 있다.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다. 전쟁의 상처가 기억되는 한, 평화를 향한 길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거제는 그 길 위에서 과거를 딛고 내일을 준비하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지영배 사장은 "과거의 비극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고통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한 사회적 합의"라며 "앞으로도 유적공원을 단순한 보존 공간이 아니라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를 배우는 살아 있는 교실로 운영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