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하루] 박영효의 태극기 일본 땅에 펄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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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9월 25일 일본 땅에서 태극기가 처음으로 게양됐다.
태극과 4괘 문양을 갖춘 그의 태극기는 122년이 지나서야 미국 해군부 항해국이 발간한 '해상 국가들의 깃발' 속에서 발견됐다.
이로써 박영효의 태극기는 '최초'의 지위를 잃게 됐다.
하지만 그가 만든 태극기가 해외에서 최초로 게양된 우리 국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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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9월 25일 일본 땅에서 태극기가 처음으로 게양됐다. 고종이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로 임명한 21세의 청년 박영효가 일본으로 향하는 메이지마루(明治丸) 호 선상에서 그린 바로 그 깃발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깃발이 최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에 역관 이응준이 최초의 태극기 제작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영효의 일본 방문 몇 달 전에 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앞두고 미국의 전권대사 로버트 슈펠트가 조선 대표에게 조인식에서 사용할 국기 제정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김홍집이 이응준에게 국기 제작을 명했다는 것이다.
태극과 4괘 문양을 갖춘 그의 태극기는 122년이 지나서야 미국 해군부 항해국이 발간한 ‘해상 국가들의 깃발’ 속에서 발견됐다. 이로써 박영효의 태극기는 ‘최초’의 지위를 잃게 됐다. 하지만 그가 만든 태극기가 해외에서 최초로 게양된 우리 국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응준의 것과 비교할 때 박영효의 태극기는 괘의 좌우가 바뀌었다. 바로 이 수정본이 1883년 3월 6일에 조선의 국기로 공식 선포됐다. 1949년 10월 15일 대한민국의 국기로 공식 제정되기 전까지 상징으로서 태극기에는 수많은 기억과 이야기가 쌓였다. 북한에서도 인공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태극기가 국기였다.
태극기의 의미는 시기와 사용 집단에 따라 달라졌다. 6·25전쟁 때는 반공주의자임을 입증하는 증명서로 사용됐고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 아스팔트 위에 등장한 대형 태극기는 시민공화주의의 상징이었다. 2002년 월드컵 경기장 관중석을 뒤덮은 초대형 태극기는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거의 담지 않았다. 얼마 전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태극기가 탄핵 찬성 진영의 대형 태극기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우리 시대의 태극기야말로 기표는 같아도 기의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일까. 우리 민족의 근대적 기억을 담아온 태극기가 통합의 상징이 될 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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