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파시즘으로 걸어가고 있다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정의길 기자 2025. 9. 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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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간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미국은 지금 파시즘으로 걸어가고 있다. 100여년 전의 독일과 지금의 미국 풍경이 너무 유사하다. 그때와 지금의 국제 정세도 흡사하다.

유럽에서 파시즘이 부상한 시기는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인 전간기이다. 전간기는 지배적인 국제질서가 증발된 때이다. 1차대전 뒤 영국의 패권이 쇠락했으나 이를 대체할 패권이 부재했다. 영국은 국제질서를 규율할 의지는 있었으나 능력이 없었다. 신흥 미국은 능력은 있었으나, 의지가 없었다.

영국은 국력이 쇠락한데다, 유럽의 세력 균형을 파괴하는 현존하고 임박한 위험이 아니면 개입을 꺼리는 ‘영예로운 고립’을 유지했다.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제사회에서 철수했다. 유럽 동쪽에서 독일을,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견제하던 러시아의 힘도 증발했다. 유럽에서는 허약한 프랑스만이 불만에 차 있던 독일을 감당해야 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의 고삐가 풀렸다.

나치 독일은 패권 공백 속에서 자급적 경제권과 세력권 분할을 노렸다. ‘오타키’(자급자족)와 ‘레벤스라움’(생활권)을 구축하려고 했다. 동유럽 쪽으로 확장해 우크라이나까지 포함하는 대독일권을 구상했다. 이를 놓고 영국과 프랑스 등과 타협하려고 했다. 그런 자급자족적 생활권에서 유대인 등 열등한 주민과 민족을 청소하고, 게르만족의 순수한 삶터로 만들려 했다. 나치는 이를 위한 첫걸음인 폴란드를 영국·프랑스가 양해하려고 하지 않자, 결국 2차대전을 일으켰다.

지금의 상황도 유사하다. 냉전 붕괴 이후 미국이 규율하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붕괴되고 있다. 기존 패권국인 미국이 스스로 자신이 만든 질서를 부수고, 공백을 내고 있다. 자국의 시장 개방과 해외 관여 등에 바탕을 둔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파괴하고 있다. 미국은 패권국이 짊어져야 할 의무를 방기하고, 그 편익만을 취하려고 한다.

미국은 이제 패권국이 아니라 가장 힘센 열강, 제일의 열강을 지향한다. 동맹국에 고율 관세와 투자, 방위 부담을 강요하며 제국의 번국으로 만들고 있다. 반면, 중국이나 러시아에는 타협과 협상으로 일관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러시아와는 세력권을 획정하려 한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미국은 지금 전세계로 전개했던 국력을 철수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린란드, 캐나다, 파나마 운하를 미국령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니다.

기세등등하던 중국과의 대결 의지도, 대만 방위 다짐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곧 발표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국가방위전략(NDS)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미국 대외전략의 1순위인 중국 억제와 봉쇄를 밀어내고, 본토와 서반구 방위를 최우선으로 한다고 전해진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카리브해 공해에서 베네수엘라 선박을 공격하고, 군사 태세를 증강하고 중남미 국가들을 훈육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국을 상대로 한 갈취로 제조업 부흥 등으로 자급자족적 생활권을 구축하려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 전역이 자신들의 배타적 세력권임을 더 확고히 하려고 한다.

우크라이나까지 확장된 자급자족적 생활권인 대독일권이라는 순수한 게르만족 삶터를 꿈꾸었던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시작으로 사회주의자, 카톨릭교도 등을 사회에서 찍어내고 몰아냈다. 트럼프의 미국도 아메리카 전역을 배타적 세력권으로 하는 자급자족적 생활권을 구축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이민자와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단속이 시작됐다. 주방위군 등 군대까지 동원되고 있다. 법과 헌법을 유린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이 확대되고 있다. 히틀러는 뮌헨 맥주홀 폭동을, 트럼프는 의사당 폭동을 위대한 봉기로 미화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혐오와 차별을 전파하고 정당화했던 찰리 커크의 죽음을 계기로 미국 사회는 이민자와 소수자를 넘어서 정치적 반대자로까지 단속과 탄압의 손길을 넓히고 있다. 커크의 추모식에서는 인종주의 정치와 기독교가 결합한 새로운 새로운 정교일치 체제가 선을 보였다.

그 바탕인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반낙태와 반엘지비티 등의 사회 보수주의, 감세와 규제 완화의 정글 자본주의, 자국 시장을 절대시하는 보호주의 등 경제적 민족주의, 기존 주민과 그 문화를 우월시하는 토착주의(네이티비즘), 큐클럭스클랜(KKK) 등으로 대표되는 인종주의인 백인 민족주의, 기독교에서 사회의 정체성을 찾는 복음주의라는 기독교 근본주의, 이 6가지 이념의 짬뽕이다.

한마디로 백인 인종주의이다. 1930년대 유럽에서 발흥했던 파시즘이다. 더 큰 문제는 1930년대 파시즘은 패전국에서 발흥했는데, 지금은 패권국이던 최대 강대국 미국에서 파시즘이 질주한다는 것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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